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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공파 발차취 > 중시조 이야기 > 평장공 휘신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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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시조(中始祖) 이야기
추모단
우리 조씨(趙氏)는 시조(始祖) 휘(諱) 맹(孟)이 풍양현에서 출생하였으니 관향(貫鄕)이 풍양(豐壤)이다. 그리고 고려 태조를 도와 통합삼한(統合三韓) 벽상개국공신(壁上開國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이시니 그분께서 우리들의 시조이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시중공(侍中公) 이후로 한동안 세계(世系)가 실전이 되었으니 현재까지도 고증할만한 문헌을 찾지 못하고 있다. 포저공은 동추공의 묘표음기에서 ‘보첩(譜牒)을 잃어버려 시조로부터 몇 대가 되는지 알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그 파조(派祖)이신 휘(諱) 신혁(臣赫)은 우리들의 중시조(中始祖)가 되신다. 고려말기(高麗末期)에 봉익대부(奉翊大夫) 밀직부사(密直副使),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 상호군(上護軍)이 되었으며,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로서 치사(致仕; 늙어 벼슬에서 사퇴함)하였다. 따라서 우리 세족(世族)을 일컬어 평장공파(平章公派) 또는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라 지칭한다. 봉익대부는 종2품에 해당되는 고려시대의 관직 품계의 하나이며, 밀직부사는 왕명의 출납과 궁중의 숙위(宿衛), 군기(軍機) 등을 맡아보는 종2품 밀직사(密直司)의 관직이며, 상호군은 중앙군의 최고지휘관으로 정삼품 무반직(武班職)으로 그 시기는 불명확하지만 고려 때의 상장군(上將軍)이 고려 후기에 개칭된 것이다. 문하시중(門下侍中) 평장사(平章事)는 고려시대 정승으로서 문하시중(門下侍中; 종1품)과 평장사(平章事; 정2품)을 역임한 관직을 합친 것이라는 해석과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정2품)가 잘못 표기된 것이라는 의견이 분분한데 타문(他門)에서도 문하시중평장사라는 관직명을 더러 사용하고 있으니 어느 것이 정확한 명칭인지는 판단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우리 세파(世派)을 평장공파라는 호칭에 유추하여 보건돼 후자의 해석이 맞는듯하다. 또한 공의 생몰년도는 물론 년도별 자세한 행적을 기록한 문건은 없으니 구체적인 이력을 밝힐 수가 없다. 상의회의도감사(商議會議都監事)라는 관직이 고려 충선왕 이후부터 제수가 되는 것으로 보아 충선왕(忠宣王;1275~1325)에서 공민왕(恭愍王;1330~1374) 시대의 인물로 추정해본다. 공의 아들인 봉상소윤(奉常少尹) 휘 천옥(天玉)은 고려사(高麗史)에 나온다. 1권 우왕 3년(禑王; 1377) 7월에 ‘풍주(豐州; 황해도 송화군 풍천)에 왜적이 입구(入寇)하였으므로 서해도 상원수(上元帥) 박보로(朴普老)가 진격하였는데, 이때 공이 부사(副使)가 되어 역전하다가 전사(戰死)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공의 손자인 휘 우(玗)는 조선조(朝鮮朝)의 군기사(軍器寺) 부정(副正)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3년(1421)에 여산현감(礪山縣監)으로 수행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조(朝鮮朝)에 들어 풍양조씨의 최초 과거급제자는 평장공의 증손자인 계팽(季砰)으로 세종 17년(1435년)에 식년시(式年試) 을과2(乙科2)로 급제를 한다. 공은 조선초 문신으로 경상도 도사(都事), 형조정랑, 사헌부 지평, 장령, 수원부사, 의금부 진무(鎭撫) 그리고 남원도호부사 등 내외직을 역임한다. 따라서 평장공파는 휘 계팽의 관직명을 딴 남원공파(南原公派)라 호칭하기도 한다.

중시조(中始祖)인 평장공의 맑은 덕행을 세습(世襲)하여 관면(冠冕)과 훈업(勳業)의 자취가 잇대어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가업(家業)은 조선조에 들어와 남원공(南原公) 이후부터 광주 송동(현 경기도 화성군 매송면 일원)에 정착을 하여 이곳을 뿌리로 자손이 번창하며 이루어진다. 그리고 어느 씨족(氏族)보다도 으뜸가는 세족(世族)으로 성장을 한다.

[筆者: 丙燮]


[참고문헌]「豐壤趙氏世祿1권, 1981」「조선왕조실록 세종편」「豐壤趙氏世譜1996」 「조남권, 풍양조씨문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