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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공파 발차취 > 중시조 이야기 > 참판공 휘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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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참판공(贈叅判公) 휘지진(諱之縝)

증참판공 지진(贈叅判公 之縝)은 시중공 맹(侍中公 孟)의 후손으로 소윤공 천옥(少尹公 天玉)에 증손이고 부정공 우(副正公 玗)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세종 17년(1435년) 문과급제 사헌부 지평, 장령, 수원부사 그리고 남원도호부사 등 내외직을 역임한 계팽(季砰)이며, 어머니는 숙부인 여흥이씨(餘興李氏)로 문과 급제하여 감찰(監察)에 머무른 극복(克復)의 따님인데 공은 5남1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시기는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참판공 묘소전경(남양선영)
공에 대한 행적은 문헌도 빈약하고 기록은 많지가 않아 정확하게 밝힐 수는 없고 관직에 대한 이력은 조선시대 종9품(從九品) 문관의 품계(品階)인 장사랑(將仕郞)의 기록이 전부이다. 공은 상수(上壽)를 누리며 고령으로 별세할 때까지 사신 곳으로 광주 송동(廣州 松洞; 현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원리) 명고서원(明皐書院) 터에 고택이 이었다고 송곡공(松谷公)이 쓴 남원공(南原公) 묘표음기(墓表陰記)에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우리 가문이 송동에 내려와 정착하며 세거지(世居地)를 이루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 최초의 사료(史料)이기도 하다. 사후(死後)에 임진왜란 때 왜적을 격퇴한 공로로 선무공신(宣武功臣)이 된 증손자인 풍양군 경(豐壤君 儆)의 훈작(勳爵)으로 공조참판(工曹參判)으로 추증(追贈)된다.

배위는 정부인(貞夫人) 동래정씨(東萊鄭氏)로 평안도관찰사(平安道觀察使) 이한(而漢)의 따님인데 슬하에는 2남1녀를 두었다. 장남 현전(賢傳)은 후대에 손(孫)이 무후(无后)하여 상세한 기록이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차남인 동지중추부사 증병조참판(同知中樞府事 贈兵曹參判) 휘 현범(賢範)만이 후손이 번성하여 대대로 재사(才士)와 석덕(碩德; 덕이 높은 사람)이 이어지고 있다.

남원공 묘표음기에 따르면 『가첩(家牒)에 기록되기를 동지부사(현범)께서 임신년(중종7년, 1512년)에 평안도 우후[虞侯]1에 임명되고 정축년(중종12년 1517년)에 정주목사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노모가 있기 때문에 떠날 수 없다.’고 임금께 글월을 올리고 벼슬을 사양하였다』고 한다. 할머니가 중종 17년(1522) 7월 27일에 먼저 돌아가시며, 1년 뒤 1523년 4월 22일 참판공 마저 별세하신다. 아드님이신 동추공 현범이 중종7년 부모님이 늙으셔서 먼 곳의 임관(任官)을 사양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11년 후 초상(初喪)을 당했으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장수(長壽)를 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世系)가 번성(繁盛)을 하며 발흥기(勃興期)는 손자 대에서 이루어진다. 동추공 현범(同樞公 賢範)은 삼형제 분을 두시는데 은율현감 언국(殷栗縣監 彦國), 증좌찬성 한풍군 안국(贈左贊成 漢豐君 安國), 판결사 인국(判決事 仁國)이다. 참판공파(叅判公派)라 함은 이들의 후손을 일컫는다.

[筆者: 丙燮]


[참고문헌] 1. 포저선생집 권33 묘표, 2. 松谷先生集 권10 음기(陰記), 3. 조남권번역 「풍양조씨세록(豐壤趙氏世錄) 一」풍양조씨화수회, 1981



1 조선(朝鮮) 시대(時代) 때의 각 도(道)에 배치된 병마 절도사(兵馬節度使)와 수군(水軍) 절도사의 다음 가는 벼슬로 병마 우후는 종3품(從三品). 수군 우후는 정4품(正四品)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