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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비명(神道碑銘)



1. 들어가며 2. 경세제민의 길 3. 포저의 성현지도
4. 포저의 의기지학 5. 포저의 가계 6. 명(銘)


5. 포저의 가계

조씨(趙氏)는 당초에 풍양(豐壤)에서 나왔다. 시조인 휘(諱) 맹(孟)은 고려 태조(太祖)를 도와 개국공신(開國功臣)에 책훈(策勳)되었으며 관직이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그 뒤로 사대부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공의 증조는 절도사(節度使) 휘 안국(安國)이고 조부는 도사(都事) 휘 간(侃)인데 첨추공(僉樞公)까지 3세(世)에 걸쳐 공이 귀하게 된 덕분에 모두 대관(大官)을 추증받았다. 비(妣) 윤씨(尹氏)는 현감(縣監) 춘수(春壽)의 딸이다. 공의 배위(配位)인 성주 현씨(星州玄氏)는 부덕(婦德)을 잘 갖추었는데 참판에 추증된 덕량(德良)의 딸이요 고려의 명신(名臣)인 덕수(德秀)의 후예로서 정부인(貞夫人)에 봉해졌다가 뒤에 정경부인(貞敬夫人)으로 추증되었다.

5남 1녀를 두었다. 몽양(夢陽)은 현감이고 진양(進陽)은 군수이고 복양(復陽)은 이조 판서이고 내양(來陽)은 진사(進士)이고 현양(顯陽)은 생원시(生員試)에서 장원하였다. 딸은 진사 이상주(李相胄)에게 출가하였다. 몽양의 아들 지강(持剛)은 현령이고 진양의 아들은 지한(持韓)이다. 복양의 아들은 지형(持衡)과 지성(持成)과 지겸(持謙)과 지원(持元)인데 지겸은 일찍이 부제학(副提學)을 지냈다. 내양의 아들 지헌(持憲)은 정랑(正郞)이다. 현양의 아들 지항(持恒)은 부사(府使)이고 지정(持正)은 군수이다.

내가 그윽이 생각하건데 옛날의 이른바 도학(道學)은 반드시 마음으로 터득한 것을 몸으로 실천하였고 그것을 다시 정사(政事)에 확대해서 적용하였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학술들에 의해 분열됨이 없이 정치가 그 도학 하나에서 나오게 된 것[不爲天下裂而治出於一]31 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세도(世道)가 쇠미해지면서 이(理)와 사(事)가 둘로 나뉘고 본(本)과 말(末)이 어긋나게 된 결과 “도를 항상 세상에 쓸모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使道常無用於天下] ”32는 격이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오직 우리 공은 근본과 실질에 힘쓰고 허탄하게 큰소리만 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이는 마치 ‘뿌리가 무성하게 퍼져야 열매가 여물고 기름을 부어 닦아야 광채가 나는 것[根茂而實遂 膏沃而光曄]’33 과 같다고 할 것이니 집에서나 나라에서나 모두 스승으로 본받을 만하다고 하겠다.

동춘(同春) 송공 준길(宋公浚吉)이 늦게야 공의 문하에 들어가서는 마음 속 깊이 진정으로 열복(悅服)하며 항상 칭송해 마지않았다. 세상에서는 혹 공의 저술 가운데 주자(朱子)와 다른 점이 간혹 있기도 하다고 의심을 한다. 이에 대해서는 동춘이 일찍이 공의 말을 외워서 나에게 들려 준 바가 있다. 그것은 즉 “주자는 공자 이후의 제일인자(第一人者)이다. 가령 내가 《대학》의 성의장(誠意章)을 논한 부분 중에 주자의 《대학장구(大學章句)》와 약간 다른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주자어류(朱子語類)》의 설을 채용한 것이니 이 역시 주자의 뜻이다.”라는 것이다. 아, 공의 학술을 알려고 한다면 이 점을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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