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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이야기

아들 내양에 대한 제문
2008-4-28 274734
이 제문은 포저집에 수록되어 있는 글입니다. 포저공이 4째 아들인 내양이 죽자 그 애틋하고 처절한 아픔을 제문으로 남긴 내용입니다. 46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가슴이 뭉클하게 하는 부성의 정이 듬뿍 담겨져 있습니다. 아들 내양(來陽)에 대한 제문 아, 내 아들이 지금 어디에 가 있느냐. 너는 어째서 나의 곁에 있지 않느냐. 어째서 너의 얼굴을 볼 수 없으며, 어째서 너의 말소리를 들을 수 없느냐. 이제는 더 이상 너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이며, 너의 말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이냐. 이제 영원히 헤어진 것이냐. 내가 무엇을 의지하고 이 세상을 살아간단 말이냐. 아 슬프다. 죽고 사는 것은 명이 있으니, 사람의 생사(生死)는 본디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네가 병을 얻게 된 이유와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일을 생각하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행하지 못해서 초래한 일이니,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간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 이것은 모두 내가 사정에 밝지 못해서 너를 죽고야 말 곳으로 몰아 넣은 것인데도 나는 그렇게 될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옛사람이 “물과 불의 화를 면치 못하게 하는 것은 부모의 죄이다.”라고 하였는데 , 이것은 참으로 나의 죄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하나하나의 일마다 모두 간장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기만 하다. 심지어 너의 병의 날이 갈수록 위중해질 적에도 나는 의인(醫人)의 말만 무턱대고 믿고서 매일 차도가 있기만을 바라고 있었으니, 내가 이처럼 심히 어리석고 미혹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느냐. 나는 평소에 그다지 어리석거나 어둡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야 내가 얼마나 자기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부터 감히 다시는 무엇을 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애가 무엇을 하려고 할 때에 네가 제지하려고 하면 네가 말을 꺼내자마자 내가 화를 내고 꾸짖으면서 꺾어 버리고는 다시 말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는 단지 자기의 소견을 설명하려고 한 것일 뿐이니, 나로서는 당연히 모두 말하게 한 뒤에 침착하게 거듭 생각해서 그 가부(可否)를 살펴야만 옳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무턱대고 미리 꺾어 버림으로써 네가 답답한 심정을 억누르고 물러가게 하였단 말이냐. 지금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통한(痛恨)의 심정이 어찌 끝이 있겠느냐. 내가 여러 아들들을 사랑함이 지극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노여움이 일어날 때에는 꾸짖음이 항상 도를 넘곤 하였으니, 이것이야말로 나의 병통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이것은 단지 일시적으로 화를 낸 것일 뿐이지 미워하는 뜻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는데, 일시적으로 화를 내며 꾸짖은 것이 평생의 통한이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느냐. 아, 너 역시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없는 나의 이 통한의 슬픔을 알고 있느냐. 아, 슬프다. 전년에 옹촌(瓮村)에 우거(寓居)하고 있을 적에 나의 거처와 네가 있는 곳이 수십 보(步)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내가 자주 가서 너의 병을 살펴보았는데, 그때마다 너는 나를 만류하곤 하였다. 그래서 내가 “지척(咫尺)의 거리를 왕래하는 것이 뭐가 힘들겠느냐. 내가 무엇이 무섭기에 그렇게 불안하게 여기느냐.”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언젠가 한번은 너를 보러 가는데 너도 내가 있는 곳으로 오다가 도중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때 네가 말하기를 “저의 기력으로 앞에 있는 들판을 열 번은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병들지 않은 것을 증명하려고 하였으니, 내가 걱정할까 항상 두려워하면서 병을 숨긴 것이 이와 같았다. 금년 5월에 너를 보려고 점촌(點村)에 갔을 적에 네가 또 만류하였으므로, 내가 “이틀만 너를 보지 않으면 보고 싶어서 못 견디겠다. 너도 어찌 나를 보고 싶은 생각이 없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급기야 네가 숨을 거두던 새벽에 네가 아비를 세 번이나 불렀는데, 너의 처가 나에게 알리려고 하자 네가 제지하였으니, 이는 나를 놀라게 할까 걱정해서였다. 아, 슬프다. 지금 이후로는 너를 한번 보고 싶어도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 너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고, 너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었구나. 아, 내가 무엇을 의지하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겠느냐. 어느 때나 죽어서 너를 보게 될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이 세상에서 눈으로 접하는 것마다 보두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것들 뿐이요 털끝만큼도 좋은 일은 있지 않으니, 오직 죽어서 너를 보는 것만이 나의 소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죽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뒤에 남은 너의 처와 고아 몇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만 원하는 것은 내가 죽기 전에 그들의 양육하고 보호해서 조금이라도 존립하게 하여 너의 제사가 길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한 뒤에는 나나 너나 모두 유감이 없게 될 것이다. 아, 슬프다. 너의 효성과 우애가 남달랐으며, 청결하고 정직한 위에 조금도 구차한 일을 행하지 않았고 사예(詞藝) 또한 월등하였다. 재주가 있거나 재주가 없거나 간에 또한 각자 내 아들이라고 하면서 이끼게 마련이니(才不才 亦各言其子) , 설령 네가 재주가 없다고 하드라도 내가 슬픔을 참을 수가 없을 텐데, 하물며 너의 재주가 또 애석하게 여길 만한 것인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느냐. 아, 슬프다. 나나 너나 불행한 것이 모두 이 지경에 이르렀다마는 너의 기특한 재질과 결백한 행실만은 그 자취가 없어지게 할 수 없기에, 너의 지행(志行) 가운데 드러내 보일 만한 몇 가지를 대략 기록해서 묘지(墓誌)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네가 지은 시장(詩章)을 수집해서 나의 사고(私稿) 뒤에 부록으로 편집함으로써 자손들에게 전할 예정이다. 아, 슬프다. 내 나이가 이미 칠십이니 앞으로 세상에 있을 날이 얼마나 되겠느냐. 그러고 보면 내가 너를 그리워할 날도 응당 많지 않을 것이요, 너를 만날 날도 응당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건대 수요(壽夭; 오래 삶과 일찍 죽음)와 궁달(窮達; 빈궁(貧窮)과 영달(榮達))을 세상사람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물론 기뻐할 만한고 슬퍼할 만한 점이 있겠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결국에는 마찬가지라서 기뻐하고 슬퍼할 만한 차이가 없을 듯도 싶은데, 과연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모르겠구나. 지금 내가 참찬(參贊)에 제수되는 은혜를 받고 소명(召命)이 재차 이르렀으니 아무래도 서울로 올라가야 할 형편인데, 이 기회에 네 처의 병도 살펴보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여전히 빈소(殯所)에 있고 장지(葬地)도 아직 정하지 못했으니, 나의 안타까운 심정이 어떠하겠느냐, 내일은 길을 떠나야 하겠기에 한 잔의 술로 너와 헤어지면서 나의 한없는 회포를 대략 서술하고 고하게 되었는데, 너도 이 말을 듣고서 나의 비통한 심정을 이해하리라고 믿는다 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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