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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이야기

텅 빈 방에는 달빛만 싸늘하고
2007-10-15 3058
이 글은 오재공 지겸의 청송심씨 부인께서 별세하시고 그 안타까운 마음을 지아비로서 제문에 담은 내용입니다. 공의 문학적 기지를 엿볼수 있는 사연이기도 합니다. 전문 내용을 소개합니다. 조지겸 지음 아! 당신은 정녕 가버린 거요? 당신의 목소리는 귓가에 쟁쟁하고 당신의 모습은 눈앞에 삼삼하여 여전히 내 곁에 있는 듯한데, 어찌하여 불러 봐도 대답이 없고 보려 해도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아! 어쩌면 꿈은 아닐는지……. 아니, 내가 미치광이 바보여서 잘 모르는 건 아닌지……. 아! 당신은 정녕 이지경이 되고 말았단 말이오? 아름다운 목소리를 끝내 다시 들을 수 없단 말이오? 평생 사랑하던 정리가 하루아침에 끊어져버렸으니, 백년을 함께하리란 다짐도 이제 다 그만이구려. 어찌하여 이토록 갑작스레 나를 버린 거요. 근심과 걱정을 감당하지 못하고 추위와 주림을 견디지 못해 차라리 아득하게 아무것도 몰랐으면 하는 거요? 슬프디 슬픈 영령은 떠나 어디로 가는지……. 무심한 하늘이여!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당신의 죽음을 가슴아파하고 지난 행적을 추도하자니, 나도 목석이 아닌데 어찌 하늘을 우러러 살이 저미듯 애가 끊어지듯 길이 울부짖지 않을 수 있겠소. 오호통재라! 병이 심해지자 당신은 정신이 혼미해지면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을 거라며 누차 영결의 말을 하려 했소. 나라고 어찌 하고 싶은 말이 없었겠소마는, 그때는 당신이 회복하리라고 여겼소. 그래서 당신이 여러 차례 말하려고 하는데도 원기가 상할까봐 억지로 막으며 차마 듣지도 않고 말하지도 못하게 한거요.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어찌 그 애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도록 내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내버려두지 않았겠소. 그랬더라면 나나 당신이나 이렇게 설움이 깊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이제 내 곡성과 내 음성이 하늘까지 닿는다 한들 어찌 당신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겠소. 아! 저 세상에 가서도 영혼이 있어 내 말을 듣는 거요? 아니, 내가 당신의 말을 못 듣는 것처럼 당신도 내 말을 못 듣는 거요? 오호통재라! 우리가 부부가 된 지 근 40년인데 좋은 일은 티끌만큼도 안 되고 좋지 않은 일이 대부분이었소. 신혼 초에 당신 집안에 혹독한 화가 닥쳐 장인어른께서 3년간 옥살이를 하셔서 온 집안에 경황이 없었으니, 그때 일을 더 무어라 하겠소. 당신이 무술년(1658) 겨울에 유배지로 부친을 뵈러 갔을 때, 나는 큰형님께서 위중하셔서 당신과 함께 갈 수 없었소. 추운 날씨에 아득한 천릿길을 당신 혼자 떠나보내자니. 마치 혼이 녹아내리는 듯했다오. 당신은 3년 뒤에야 겨우 북쪽에서 돌아왔는데, 얼마 안 있어 다시 충주로 부모님을 뵈러 가게 되었소. 연이어 몇 년을 시달렸으니 어떻게 병이 나지 않을 수 있겠으며, 가난 때문에 떨어져 살게 되었으니 내가 어떻게 마음을 달랬겠소. 임인년(1662) 봄에 장인어른께서 사면 받고, 당신이 배편으로 한양으로 돌아오게 되어, 내가 강가로 마중을 나갔소. 당신은 갓난쟁이를 품에서 떼어 무릎에 앉히곤 서로 마주앉아 반가워했으니, 한 번이나마 양미간을 편 것은 오직 이날 저녁뿐이었소. 아! 나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데다 집안에 병고도 많아 늘 당신을 처가에 맡겨놓았는데, 당신 집안에 너무도 참혹한 화가 들이닥쳤소. 7~8년 사이에 당신 동기간이 대부분 목숨을 잃었고, 지난해 몇 개월 동안에는 장인, 장모마저 잇따라 별세하셨소. 형제를 잃은 마당에 부모님마저 여의었으니, 당신은 삶의 한계에 부딪쳐 기진맥진하게 되었소. 게다가 해산한 뒤로 가난과 추위로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다 보니, 지병이 심해져 아이를 먹일 수가 없었소. 아이는 강보에 싸인 채 굶주려 죽고 말았고, 당신도 병이 점점 더 심해져 끝내 숨을 거두었소. 세상에 이런 일을 보게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소. 불에 타는 듯하고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에 먼저 죽지 못한 게 한스럽소. 이! 당신이 부모님을 여읜 지 채 1년이 안 되었고 어린 아기를 잃은 지도 겨우 백 일이 지났는데, 당신 영구가 또 땅에 묻히게 되었구려. 아!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단 말이오. 하늘이시여, 귀신이시여!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죄 없는 처자식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한단 말입니까. 아! 당신은 집안의 환난을 당하면서부터 병이 심해지더니 부모님 상을 치르고는 하루가 다르게 여위어갔소. 겨울이 되기 전부터 부친의 병이 심해져 곁을 떠날 수 없는 형편이다 보니, 아이가 태어나도 보지 못하고 당신이 병들어도 보살펴주지 못했소. 그러다 어느 날 저녁 집에 가 보니, 당신의 병이 너무도 위중해져 있었소. 아이는 곁에서 빽빽 우는데 당신은 가물가물 사경을 헤매고 있었으니, 이때의 놀란 마음을 무어라 말할 수 있겠소. 재빨리 약을 먹여 겨우 연명하게 했으나 잠시나마 병상을 털고 이러나게 되자 곧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오. 당신의 고단한 신세가 가엾고 추위에 떨고 굶주리는 게 안타까워, 새 집이 지어질 무렵 약조를 했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부모님 봉양하고 자식들 잘 키우자고……. 당신은 내가 출세하게만 바라고 나는 당신이 수태하기만 바라며, 이제부터는 잘 지내리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병이 나아갈 무렵 조리를 제대로 못 해 늦봄에 다시 병이 심해졌소. 그때도 나는 부친의 병환으로 몇 달째 근심에 싸여 겨를 없이 지내고 있었기에, 당신은 내가 애태울까봐 아프다는 말도 못 했소. 부친의 병세가 조금 나아지고서야 당신이 아픈 줄 알았고, 이웃집으로 데려와 백방으로 치료를 해봤지만 이미 손 쓸 수 없는 지경이었으니,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아! 당신이 한번 앓아눕자 인사가 모두 두절되었소. 집에는 장성한 자식도 없고 주변에는 돌봐주는 친척도 없어 나 혼자 당신을 건사하다 보니 제대로 먹이지도 돌보지도 못했소. 정말이지 뭐 하나 한스럽고 후회스럽지 않은 일이 없구려. 더더욱 통탄스러운 것은 의원의 말을 무턱대고 믿어 당신 피부에 계속해서 상처를 내고 뜸을 뜬 일이라오. 그때는 당신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이런 극약 처방이라도 쓰지 않을 수 가 없어서 그랬는데, 결국 몸만 더 상하고 병은 고치지도 못했구려. 직접 칼을 댄다고 한들 어찌 해독이 이보다 더하겠소. 당신의 고통엔 찬 신음소리가 생각 날 때마다 내가 잘못 치료한 게 후회스러워 살이 떨리고 뼈가 시리다오. 죽어서 무슨 낯으로 당신을 보겠소. 천지는 끝이 있다 해도 이 한은 끝이 없을 거요. 아! 내가 여러 차례 병을 앓았기에 병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소. 그런데 유독 당신의 병에 대해서만은 위중한 줄 전혀 몰라 죽음이 바로 코앞에 닥쳤는데도 깨닫지 못했다오. 정신이 나가서 그런 걸까? 어쩌면 그렇게 까맣게 몰랐단 말이오. 아! 당신이게 처음 병이 생겼을 때, 조카 징이의 꿈에 어떤 어른이 나타나 너무도 간곡하게 당신을 살릴 방도를 일러주었다는데, 그 동안 내게 말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이야기해주었다오. 아! 과연 신령님이 당신을 애처롭게 여겨 살리려고 그런 거라면 어째서 내 꿈에 나타나 조기에 치료하게 하지 않았단 말이오. 오랫동안 몸이 축난 것을 생각하면 수명이 단축된 것도 당연한 일이지만, 병에 걸린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소. 당신이 죽고 되돌아 봐도 의구심은 쌓여만 가 마음이 심란해서 안정이 안 되는구려. 영혼이 있다면 어째서 꿈에 나타나 한번 일러주지도 않는단 말이오? 아! 당신은 병든 와중에도 집 짓는 데 온 정신을 다 쏟았소. 덕분에 여러 해 동안 고생하여 집이 완공되었을 때는 병이 너무 깊어져 있었소. 당신은 빨리 새 집으로 이사하여 운명할 때를 기다리고 싶어 했지만, 세속의 금기에 구애되어 그 말을 따라주지 못했소. 임종하던 날 저녁에는 금기를 무릅쓰고라도 옮기려 했지만 짐꾼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는데, 당신이 그새 눈을 감아버렸으니, 당신의 한은 갈수록 더해질 듯싶소. 당신을 보내고 얼이 빠진 채 새 집 문에 들어서서 대성통곡하자, 이웃에서 듣고는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오. 아! 왜 하필 지금인 거요? 왜 하필 지금인 거요? 당신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 당신이 하루아침에 떠나자 모든 일이 끝나버렸소. 평생 살 집을 지어놓고 살아 보지도 못했으니,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는구려. 하늘은 아득히 높기만 하고 귀신은 모질기만 하니, 애통해 한들 어디에 닿을 수 있겠소. 텅 빈 방에는 달빛만 사늘하고, 어두운 마당에는 바람만 스산하오. 지난 기약에 씻은 듯 무너져버려 지금 새집은 황량하기만 하오. 무얼 보면 화들짝 놀라고 당신이 남긴 자취를 어루만지면 콧날이 시큰해지니, 나 혼자 이 집에 들어와 어떻게 견디겠소. 차라리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 보지 않는 게 나을 것만 같소. 아! 십수 년 세월도 눈 깜짝할 사이라지만, 당신과 내게는 더더욱 꿈결 같소. 아득히 멀리 떨어져 몇 년을 지냈고 한 고장에 살았어도 거의 만나지 못해, 함께 지낸 시간은 10분의 1도 되질 않소. 이렇게 헤어져 있었으니, 사는 게 어땠겠소, 적막한 정동(貞洞)의 쓸쓸한 남쪽 기슭에서 남들은 견뎌내지 못할 고생을 하면서도 당신은 내게 한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으니, 이 역시 사람으로서 하기 어려운 일이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어찌 더 가슴 아프지 않겠소. 아! 당신의 강한 정신력과 다부진 용모로 볼 때 어디에 단명할 징조가 있다 하겠소. 재액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밤낮으로 근심하고 골육마저 다 잃게 된데다, 기구하고 못난 내게 우환이 많아 생활이 안정되지 못하고 길에서 방황하다 보니, 함께 지내지도 못하고 제때 치료조차 못 해 이렇게 된 거라오.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생하다 결국 병에 걸려 요절하고 말았으니, 오호통재라! 당신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한 것이 내가 아니고 누구겠소. 이것도 당신의 운명인 거요. 아니면 내 불행으로 인한 거요? 누군들 죽지 않겠소마는 당신의 죽음은 누구보다도 원통하고 세상에 배우자를 잃은 이가 많긴 하지만 나는 유난히 더 슬프다오. 하지만 당신 혼을 위로하지도 못하는데, 내 슬픔을 어떻게 달래겠소. 아! 살아서는 나 때문에 고생했는데 죽어서도 후하게 해줄 수 가 없구려. 좋은 묏자리에 당신을 안장하고 싶은 마음에 분주히 알아보고 다니느라 시간이 오래 지나도록 결정을 못하고 있었소. 그런데 다행히 우리가 종가가 터 잡고 살던 송라동(松蘿洞)이 선대의 선영과 아주 가까워 여러모로 편리하고 지세도 괜찮소. 더 깊이 상의하고 요모조모 따져 보다가 좋은 날 좋은 때를 기다려 내년 봄에나 장례를 마무리하려 하오. 만약 더 나은 곳을 얻으면 이장하겠지만, 지금은 우선 이 언덕 한쪽에 임시로 안장을 해야겠소. 장례 지낼 날이 임박했소. 황량한 들판에 사랑하는 이를 묻고 돌아서면 적막한 빈 집에 당신은 언제나 다시 와볼는지……. 오호통재라! 당신이 만약 불행하게도 몇 년 전에 죽었더라면 그때는 정도 지금보다 깊지 않고 어려움도 극에 달하지 않았으니, 내가 이렇게까지 가슴아프기야 하겠소? 당신이 만약 다행히 몇 년 더 살다 갔더라면 아이도 품에서 떠날 정도가 되고 집안도 그런대로 안정 되었을테니, 내가 이렇게까지 가슴 아프기야 하겠소? 내가 본래 병이 많아 슬픔과 우환을 겪는데 이골이 났는데, 당신을 여의고 난 후론 살아갈 기력이 다 떨어져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구려. 앞으로의 일이 슬프기만 하니 행여 좋은 일이 있다 한들 누구와 함께하겠소. 아! 아득한 세상 광활한 대지에 저승 문이 한번 닫히자 다시 찾을 길이 없구려. 우리의 인연이 다하지 않았다면 다음 생을 기대해 볼 밖에……. 오호애재라! 내 옷은 큰형수가 건사해주시고 우리 아이는 어머니께서 길러주시니, 당신은 염려하지 마오. 온갖 슬픔과 한을 어찌 다 글로 표현하겠소. 한 차례 통곡하고 술잔을 올리자나 하늘의 해도 흐릿해지는구려. 오호애재라!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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