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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라선영

송라선영은 초계문신으로 정조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형조판서(刑曹判書) 문정공 만원(文靖公 萬元)이 계신 곳이다. 문정공은 한성판윤 겸 지경연사(漢城判尹兼知經筵事)로 재직 중 돌아가셔 아버지가 계신 송라선영(현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송라리 당봉산하)에 장사를 지내니 향년 60세였다.

이조판서 겸 대제학(吏曹判書兼大提學) 송곡공 복양(松谷公 復陽)께서 이곳으로 오신 것은 근세의 일이다. 송곡공의 원래 장지는 교하현(交河縣) 동쪽의 은전리(현 파주시 탄현면 유현리)였다. 명재공(明齋公) 윤증(尹拯)이 찬(撰)한 행장(行狀)에 의하면 ‘공의 묘지는 나의 선친(美村 尹宣擧)과 하나 사이 산기슭에 있으므로 매번 성묘를 오면 제문을 지어 참배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송곡공은 어려서부터 윤순거(尹舜擧)형제와 교우하였고, 특히 미촌공 윤선거와는 친분이 두터워 미촌공의 상(喪)에 송곡의 아들인 오재공(迂齋公)이 복(服)까지 입었던 사이이다. 또한 선친인 포저공의 묘지문(墓誌文)은 미촌공께서 찬했고, 송곡공의 행장은 그의 아들인 명재공께서 지었으며, 두 집안은 사돈지간 이기도 하다. 그 인연은 저승에서도 끊을 수 없었는지 유택(幽宅) 또한 이웃하고 있다. 그리고 그 우의는 아들 대까지 이어져 오재공은 윤증(尹拯)과 함께 소론의 우두머리가 된다.

그렇게 각별한 인연이었건만 송곡공은 파주와 이별을 고한다. 송곡공과 그 후손들이 파주에서 이장을 한 곳은 칠보산 산기슭 송라리 당봉 산하이다. 지금은 이곳에 송곡공을 비롯하여 12대손인 병두공(丙斗公)까지 송곡공파(松谷公派) 장손일가(長孫一家)의 세장지(世葬地)를 이루게 된다.

[筆者: 丙燮]


분묘목록

11世 이조판서겸홍문관예문관대제학시문간송곡복양묘합부(吏曹判書兼弘文館藝文館大提學諡文簡松谷復陽墓合祔) 신도비영의정조현명찬묘지제학오수채찬(神道碑領議政趙顯命撰墓誌提學吳遂采撰)
12世 학생지형묘합부(學生持衡墓合祔) 묘표음기대사간이세일찬(墓表陰記大司諫李世勉撰)
13世 학생명덕묘각분(學生命德墓各墳)
14世 전주판관증이조참의한보묘합부(全州判官贈吏曹叅議漢輔墓合祔)墓碣文吏曹判書止庵李喆輔撰)
15世 증이조참의정우묘합부(贈吏曹叅議廷禹墓合祔)
16世 부평부사증이조판서상존묘합부(富平府使贈吏曹判書象存墓合祔)
17世 형조판서예문관제학시문정만원묘합부(刑曹判書藝文館提學諡文靖萬元墓合祔) 신도비영의정정원용찬(神道碑領議政鄭元容撰)
18세 이조판서시문헌학년묘합부(吏曹判書諡文憲學年墓合祔)
19世 진사대구판관희필묘합부(進士大邱判官熙弼墓合祔)
22世 성묵묘(城默墓) 유표석(有表石) , 홍묵묘합부(弘默墓合祔)외산, 정묵묘합부(正默墓合祔), 상묵묘쌍분(祥默墓雙墳) 묘표자병섭찬(墓表子丙燮撰), 은묵묘합부(殷默墓合祔), 장묵묘합부(章默墓合祔),광묵묘(光默墓)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