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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공휘상묵 반남박씨 묘표(趙公諱祥默 潘南朴氏 墓表)

여기 자식들의 그리움 뒤에 두고 떠날 때 가슴에 복받치는 서러움 있었지만 당신께서 뿌려놓으신 사랑과 마음이 가득히 담겨 있는 풍양인(豐壤人)이신 조공 휘상묵(趙公諱祥默)의 만년유택(萬年幽宅)이 자리 잡고 있다.

1912년 3월 19일(一九一二年三月一九日) 매송면 원리(梅松面 院里)에서 부(父) 돈범(敦範)과 모(母) 파평윤씨(坡平尹氏) 사이에 차남(次男)으로 출생하시어 유소년기(幼少年期)에 조부(祖父)께서 초졸(早逝)로 평탄치 못한 시절을 보내시었다. 청장년기(靑壯年期)에 쓰러진 가세(家勢)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 하시던 중 민족(民族)의 큰 시련인 난(亂)이 있어 결연(決然)한 자세(姿勢)로 참전(參戰)하시었으나 병(病)을 얻어 향리(鄕里)로 돌아와 1951년 9월 25일(一九五一年九月二五日) 향년(享年) 40세(四○歲)로 세상을 떠나시니 아들 병섭(丙燮)은 태중(胎中)에 있었다. 우리는 유학(儒學)의 거두(巨頭)인 포저공 익(浦渚公 翼)의 후손(後孫)으로 대대로 선비의 집안이다. 그러나 선친(先親)께서는 일제하(日帝下) 혼란기(混亂期)와 가계(家系)의 궁핍으로 많은 학덕(學德)을 쌓지 못하였으나 그 성품(性品)이 지극히 어질고 지행(志行)은 으뜸이며 사람을 사랑하고 베풀기를 좋아하셨다고 한다.

조공휘상묵 반남박씨휘정희의 묘소전경

어머니는 반남박씨 정희(潘南朴氏 正喜)이니 부(父) 홍서(鴻緖)이며 현석공 세채(玄石公 世采)의 후손(後孫)이다. 부군(夫君)의 이른 타계로 논밭 일은 물론 남자(男子)가 해야 할 일까지 하며 온갖 풍상(風霜)을 다 겪으셨으나 말년(末年)에는 자손(子孫)들의 번창으로 초년고생(初年苦生) 위안(慰安)을 얻으셨으며, 평생(平生) 가계(家系)을 위한 치성(致誠) 대소가(大小家)의 일 등으로 분주히 보내시다 2003년 10월 18일(二○○三年十月一八日) 향년 91세(九一歲)로 큰 병(病) 없이 타계(他界)하시니 천수(千壽)를 누리셨다.

슬하에 1남3녀(一男三女)를 낳았는데 외아들인 유복자(遺腹子) 병섭(丙燮)은 대학교수(大學敎授)이며 강릉인(江陵人) 최금숙(崔錦淑)과 결혼(結婚)하여 1남1녀(一男一女) 대기(大紀) 진경(珍鏡)을 두니 모두 도미(渡美) 유학중(留學 中)이다. 장년(長女) 병윤(丙允)은 부평인(富平人) 이규진(李奎振)에게 출가(出嫁)하여 기환(起桓) 기원(起源) 기형(起珩) 기홍(起洪)을 낳았으며 2녀(二女) 숙자(淑子)는 부평인(海平人) 윤용진(尹龍鎭)에게 출가(出嫁)하여 홍원(洪元) 홍준(洪俊) 미경(美瓊) 홍옥(洪玉)을 두었다. 3녀(三女) 순덕(順德)은 경주인(慶州人) 손창호(孫昌鎬)에게 출가(出嫁)하여 병훈(炳訓) 정훈(正訓) 소현(素炫)을 두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머니의 사무치는 아픔이 그리움으로 삭혀지기까지 53년(五三年)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 어머님의 가슴에는 맑고 밝은 빛만이 자리하길 소망하며, 아버지라 불러보지 못한 불효고(不孝孤) 병섭(丙燮)이 그 축원(祝願)을 빗돌에 담아 이제야 묘도(墓道)에 세웁니다.
부디 두분 왕생극락(往生極樂) 하옵소서

二○○四年 四月 三日


不孝孤 工學博士 丙燮 삼가 碑文을 짓고
香泉 尹明順이 앞면의 글씨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