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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선영

남양선영
풍양조씨(豐壤趙氏) 평장공파(平章公派)의 실질적인 중시조인 남원도호부사공(南原都護府使公) 계팽(季砰)의 묘소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송림리 산15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7대손인 송곡공 복양(松谷公 復陽)이 쓴 묘표음기(墓表陰記)에 의하면 남원공은 세종17년 문과급제하여 관직은 부사에 그치고 자세한 행적은 세대가 오래되고 문헌이 없어서 상고할 수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세종30년 사헌부 지평(司憲府 持平)을 시작으로 단종원년 형조정랑(刑曹正郞), 단종1년 사헌부 장령(司憲府 掌令), 세조1년 수원부사(水原府使), 세조3년 의금부 진무(義禁府 鎭撫) 등을 역임한 기록이 최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 지역일대가 우리 가문(家門)의 세거지(世居地)가 된 것은 남원공 이후부터이다. 어떤 연유로 이곳으로 내려와 정착하였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다만 공의 빙부(聘父)인 감찰공(監察公) 이극복(李克復) 묘소가 뒤쪽에 있는 것으로 보아 처가마을로 이주하여 정착한 것이 아닌지 추측을 할 뿐이다. 여흥이씨(驪興李氏) 가첩(家牒)에 의하면 그 집안 일파가 송곡(松谷; 현 매송일원)으로 이주한 시기는 조선개국 초이다.

남원공 묘소는 숙부인 여흥이씨와 정좌(丁坐)쌍분이며, 빙부인 감찰공은 남원공 묘소 뒤쪽에 숙부인 두원오씨(荳原吳氏)와 합부이다. 조하(兆下)에는 증공조참판공 지진(贈工曹參判公 之縝)과 정부인 동래정씨(東萊鄭氏)는 정좌쌍분이며, 서쪽으로 한풍군(漢豐君) 배위 정경부인 여산송씨(礪山宋氏) 묘와 단양군수공(丹陽郡守公) 배위 남양홍씨(南陽洪氏) 묘가 있다. 그리고 2004년 5월에는 묘소가 실전된 1세 평장공 신혁(平章公 臣赫), 2세 소윤공 천옥(少尹公 天玉), 3세 부정공 우(副正公 玗)을 추모하는 제단을 선영 정상에 건립하였다.

[筆者: 丙燮]


분묘목록

1世 고려국문하시중평장사신혁추모단(高麗國門下侍中平章事臣赫追慕壇)
2世 고려국봉상사소윤천옥추모단(고려국봉상사소윤천옥追慕壇)
3世 조선국군기사부정우추모단(朝鮮國軍器寺副正玗追慕壇)
외구감찰이극복묘합부(外舅監察李克復墓合祔) 유표석(有表石)
4世 남원부사계팽묘쌍분(南原府使季砰墓雙墳) 묘표음기7대손대제학복양찬(墓表陰記七代孫大提學復陽撰)
5世 장사랑지진묘쌍분(將仕郞之縝墓雙墳) 유표석(有表石)
7世 한풍군안국전배여산송씨묘(漢豐君安國前配礪山宋氏墓) 유표석(有表石)
11世 단양군수진양전배남양홍씨묘(丹陽郡守進陽前配南陽洪氏墓) 유표석(有表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