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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사선영

진위공(振威公) 한숙(漢淑)의 묘소는 충남 아산시 초사동(書堂洞)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과의 연(緣)은 거슬러 올라가 진위공의 고조부인 포저공(浦渚公) 익(翼)이 1613년(광해 5년)과 1634년(인조 14년) 두 번에 걸쳐 관직을 버리고 우거(寓居)를 하면서 비롯된다.

그리고 1700년 전후하여 도산공의 손자인 세중공(世仲公) 명재(命才)가 이곳에 되돌아 온다. 공은 도산서원(道山書院)으로부터 직선거리로 4Km 남직한 곳인 초사동 개화내 마을 부근에 정착을 하며, 한식(漢寔), 한숙(漢淑), 한철(漢哲), 한덕(漢德), 한일(漢逸), 한길(漢吉) 6 형제를 낳는다. 세중공은 4형제 중 막내였는데 중형(仲兄)인 여통공(汝通公) 명형(命亨)이 28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을 하여 후사가 없었다. 공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둘째 아들로 하여금 대(代)를 잇게 한다. 이분이 바로 1727년(영조3) 생원시에 합격하여, 진위현령(振威縣令)을 지내신 휘한숙(諱漢淑)이다. 진위공께서 태어나기 13년 전의 일이니 후대에 와서 입적을 한 것 같다. 결국 온양에 정착하여 뿌리를 내린 도산공파의 후손들은 여통공(汝通公) 명형(命亨), 세중공(世仲公) 명재(命才)의 자손들이다.

여통공이 돌아가시며 장지로 모신 곳은 반월 직동선영이었다. 그러나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는 없지만 집안에 전하여 내려온 구전에 의하면 아들인 진위공 한숙(漢淑)이 이곳 초사선영으로 천장(遷葬)을 하였다고 한다. 공과 외사촌간이었던 경은부원군 김주신(金柱臣)은 동갑내기의 요절을 안타까워하며 묘지명(墓誌銘)을 남기는데 그 내용 중 일부를 여기에 다시 소개한다

남한 하도면 직동 산지에 / 南漢下道直洞之阡
소목으로 장사 지냈으니 조씨의 선영이다 / 葬以昭穆趙氏之先
정좌(丁坐)를 내룡(來龍)삼아 우강에 쓴 무덤은 / 負丁爲原 墳于左岡
여통의 유택이니 그 유혼 백세가 지나도록 영원하리라/ 是惟汝通之室 百世魂永寧


이곳에는 할아버지인 도산공과 아버지인 정랑공 그리고 할머니, 어머님이 계신 곳이기에 유혼(幽魂)이라 할지라도 가고 싶지는 안았을 것이다. 그래도 때 맞추어 벌초도하고 수시로 찾아줄 아들이 낫다고 보았는지 직동선영에 작별을 고하고 양아들 곁으로 내려오신다. 그리고 초사선산에는 공의 후손들이 소목(昭穆)에 따라 안장되며 진위공파의 세장지지(世葬之地)로서 위엄을 갖춘다.

이 선산은 원래 공의 외증조부인 연양부원군 이시백(李時白)의 사폐지로 30만평이나 되는 꽤 큰 산을 외손들에게 물려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후손들은 그 선산을 잘 보존하지 못하고 대부분 남의 수중으로 넘어 가게 된다. 그나마 끝자락으로 조상님들이 계신 5만여 평도 일제 강점기 남에게 매도(賣渡)되는 과정에 사협공(士協公) 웅재(雄載)께서 사재를 털어 되찾았다고 한다.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이 남달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협공 역시 계씨(季氏)의 가세(家勢)가 기울며 또다시 위기에 봉착한다. 계씨의 자금 지원을 위해 매도(賣渡)가 불가피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조상의 누를 끼치는 일을 반복할 수는 없기에 고심 끝에 반(半)은 종중(宗中)에 희사하고 나머지는 종원들이 보상해주었으면 하는 제안을 한다. 선영으로 조성된 선산을 마구 팔아먹는 몰지각한 후손들에 비한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래서 1946년(병술년) 진위공 후손 31명, 직장공 후손 7명이 모금을 하여 선산을 인수를 하고 비로서 공동명의로 등기를 한다. 그 당시 종원들이 결의한 문건에 의하면 출연금(出捐金)을 출자(出資)한 규모에 관계없이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지분을 팔 수 없도록 명문화(明文化)하였다.

이렇게 굴곡과 파란을 겪으며 보존되어온 초사 진위공파 선영에는 여통공(汝通公) 명형(命亨), 진위공(振威公) 한숙(漢淑) 그리고 그 이하 후손들께서 영면(永眠)을 하고 있는 세장지지(世葬之地)이다. 진위공파 후손들은 이곳이 뿌리가 되어 참판공파 가문 중 가장 번성한 일족(一族)으로 성장을 한다.


분묘목록

13世 통덕랑 휘명형묘합부(通德郞 諱命亨墓合祔) 유표석(有表石) 묘지문(墓誌文) 경은부원군김주신찬(慶恩府院君金柱臣撰)
14世 생원진위현령 휘한숙묘합부(生員振威縣令 諱韓淑墓合祔) 유표석(有表石)
15世 통덕랑 휘정인묘합부(通德郞 諱廷寅墓合祔)
15世 통덕랑 휘정온묘합부(通德郞 諱廷溫墓合祔)
16世 휘영존묘합부(諱榮存墓合祔)
16世 휘선존묘합부(諱善存墓合祔)
16世 휘홍존묘합부(諱泓存墓合祔)
16世 휘유존묘합부(諱猷存墓合祔)
17世 휘만회묘합부(諱萬恢墓合祔)
17世 휘만승묘합부(諱萬升墓合祔)
17世 휘만정묘합부(諱萬鼎墓合祔)
17世 휘만응묘합부(諱萬膺墓合祔)
17世 휘만필묘합부(諱萬弼墓合祔)

외 18世 년(年)자에서 21世 돈(敦)자 항렬(行列)까지 100여기의 분묘가 안장되어 있다.

[筆者: 丙燮]


[참고문헌]「豐壤趙氏世譜 1996」「趙明載, 개화촌종회백서」「김주신, 수곡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