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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이야기 > 시조 맹이야기 > 탄생의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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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의 설화[강생시사적(降生時事蹟)]

교리 수익(守翼)1 지음

나이 많은 노인들을 통해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조시중(趙侍中)은 풍양(豐壤)의 독산(獨山)2 암석(巖石) 밑에서 태어났고 그 후에 풍양에서 살았으니」지금의 사창(司倉)3 옛터 독장산(獨將山) 석두(石竇 ; 바위굴 또는 석굴)이다(지금은 홍경단산(洪景丹山)의 뒤 동내).
공빈묘(恭嬪墓)로 쓸 산을 처음 잡을 때에 술관(術官; 풍수,복서, 점술에 정통한 지관(地官)) 이기옥(李起沃)이 현지를 보고와 복명(復命; 명령 받은 일을 집행하고 나서 그 결과를 보고함)하기를 「장군주마지형(將軍駐馬之形)4이니 극길(極吉)하다.」며 고(告)하였다고 한다.

- 풍양에 사는 사인(士人) 오씨(吳氏)가 전하는 말 -


[編輯: 丙燮]


[참고문헌] 조남권번역 「풍양조씨세록(豐壤趙氏世錄)」풍양조씨화수회, 1981



1조수익 [趙守翼 , 1565~ 160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시보(時保). 홍문관응교 정기(廷機)의 아들이다. 1590년(선조 23)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학유에 제수되었다. 이후 선균관전적, 사헌부지평, 병조정랑, 홍문관부수찬, 교리 등을 역임한 뒤 병을 얻어 고향에 돌아와 죽었다. 사후 1603년에 호성선무종훈녹권(扈聖宣武從勳錄券)이 내려졌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에 증직되었다.
2현 송능리 산1번지 풍양조씨 종산일대의 산 이름, 독장산(獨將山)도 시대에 따라 달리 불려 졌는데 현재는 그 산밑 부락을 「독정리」라 부르며 그 산에 있는 현성암(見聖庵)을 「독정리 절」이라 부르기도 한다.
3조선시대 때 사창서(司倉署)는 양곡을 맡아보던 토관직(土官職)의 하나이다. 여기서는 사창(社倉)이라 봄이 옳은 듯 하며, 이는 조선시대 때 환곡(還穀)을 저장해 두던, 각 고을의 창고(倉庫) 뜻한다.
4독산(獨山)의 지형이 장군(將軍)이 말을 멈추고 있는 형상(形狀)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