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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이야기 > 시조 맹이야기 > 왕건과 만남의 설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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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과 만남의 설화(1){제우시사적(際遇時事蹟)}

승지 조즙1 지음

세상에 전해지는 말이지만 「고려태조(高麗太祖)가 신라(新羅)를 정벌하다가 영해지방(寧海地方)2에서 크게 패전하고 모든 장수들과 같이 고개 마루턱에서 쉬는데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일이 급하게 되었습니다. 왕업(王業) 달성 이루기 위해서는 필히 풍양에 사는 조암(趙巖)을 맞이하여 상의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하는지라 여조(麗祖;왕건을 말함)가 드디어 몸소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돌아와 정승(政丞)으로 삼으니 그때 나이가 70여세였다.」한다.

– 즙(濈)이 세상 보는 안목이 있는 정우복(鄭愚伏)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 -


[編輯: 丙燮]


[참고문헌] 조남권번역 「풍양조씨세록(豐壤趙氏世錄)」풍양조씨화수회, 1981



1 조즙 [趙濈, 1568~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덕화(德和), 호는 화천(花川). 첨정 종돈(宗墩)의 증손이며, 수원(守元)의 아들이다. 1591년(선조 24)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4년 부수찬을 거쳐 이듬해 전적이 되고, 1611년(광해군 3)에 장령을 역임하였다. 1623년(인조 1)에 행호군을 거쳐 이듬해 동부승지가 되었고, 《명종실록》의 개수·편찬 때 부교리로서 참여하였다. 인조가 등극한 해에는 사은사 겸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문장이 뛰어났다.

2 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