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login
Top home
풍양조씨이야기 > 시조 맹이야기 > 개요


+ 풍양의 유래


+ 시조 맹이야기


+ 분묘수호의 역사


+ 세계도

+ 항렬표


+ 명문가 풍양


개요: 시조 맹이야기

시조 시중공(始祖 侍中公) 맹(孟)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 후손들에 의해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 이전 기록은 매우 빈약하다. 우리나라는 전란이 잦아 그때마다 귀중한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잿더미가 되었다. 추측하건대 우리집안의 선대 대대로 내려온 고문서 및 가첩(家牒) 등들도 그 혼란의 시대 후손들의 관리 소홀로 잃어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광해군 2년 공빈이 왕비 지위로 격상되어 묘소가 성능(成陵)으로 성역화 되며, 지척에 있는 시중공 묘소는 이로 인해 봉분이 깎여 없어지고 평장이 되는 봉변을 당한다. 흩어져 살던 종친들은 세계 (世系) 및 가문보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원상회복을 위한 상소 등을 위해 잦은 모임과 연락이 있었던 것 같다.

시중공에 대한 이야기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활발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문헌고증에 의한 학술적이며 사실적인 자료보다는 풍양현을 중심으로 한 마을 촌로들의 구전 및 설화적인 이야기에 의존하고 있다.

고려의 건국이 936년이고 인조가 1622년 집권을 하므로, 650여년 전 일들을 추적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고려실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고려사 역시 세종조(世宗祖)에 들어와 새 왕조건립의 정당성을 드러내기 위해 편찬된다.

여기서는 신풍부원군(新豊府院君) 장유(張維, 1587~1638 )의 묘비명, 포저공(浦渚公) 익(翼, 1579~1655)의 묘비음기, 송곡공(松谷公) 복양(復陽, 1609~1671)의 묘표음기,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시중공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기록한 교리공 수익(守翼; 1565~1607)의 탄생의 설화, 화천공(花川公) 즙(濈, 1568~1631)의 왕건과 만남의 설화(1), 창강공(滄江公) 속(涑, 1595~1668)의 왕건과 만남의 설화(2) 등의 글(원문, 번역문)들을 소개하고 있다.

[筆者: 丙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