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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이야기 > 풍양의 유래 > 현성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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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암 이야기

현성암 현판
우리 시조(始祖)이신 시중공의 유적지인 현성암은 고려시대에는 풍양현(壤縣) 이었지만 현재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릉리에 있는 암자(菴子)로써 풍양조씨의 재궁(齋宮)이기도 하다.

암자의 뒤에 있는 방 두칸 정도의 석굴(石窟)은 시중공께서 은거하며 수양하던 곳으로 수양굴(修養窟)이라고 하며, 약사전(藥師殿) 뒤에 아직도 남아 있다.

그 후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후손들이 선조의 유적지를 보호하고 추모하기 위해 석굴 앞에 암자(菴子)를 짓고 현성암이라고 하였으니 그 시기는 고려조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성암 전경
조선 철종 11년(1860년)에 시중공의 후손이며 스님인 보월 혜소(寶月 慧昭)가 법전(法殿, 法堂의 별칭)과 우화루(雨花樓)를 중수하였으며, 고종 19년(1882년)에는 봉성화상(鳳城和尙) 까지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옛 기록으로는 현성암중수기(見聖菴重修記), 현성암우화루기(見聖菴雨花樓記), 현성암중수 각부 탱화신성기(見聖菴重修 各部 幀畵新成記) 등이 있고, 시중공이 수양할 때 홀로 마시던 우물이란 뜻의 독정(獨井)이 사찰 내에 있다. 이 우물은 어떤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인근부락에 공동의 식수원이 되곤 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인근 사람들은 이 절을 『독정이 절』이라 하며, 산사의 아래 촌(村)은 독정리(獨井里)라 부른다. 또한 이 절에는 시중공이 수양할 때 기거했다는 수양굴(修養窟)이 있고, 우리 조씨문중(趙氏門中)에서 이름있는 분이 별세(別世)하면 가지가 하나씩 말라 죽는다는 노송(老松)이 있었는데 이것은 시중공이 직접 심은 소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25 전난 때 포탄을 맞아 쓰러져서 지금은 볼 수가 없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해인1950년경 이 소나무는 폭탄을 맞아 산령각(山靈閣)과 약사전 사이에 쓰러졌는데 신기하게도 이 두 건물은 멀쩡하고 천년노송(千年老松)만 죽었다는 일화만이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약사전·화양루·산신각·요사 등이 있다. 화양루에는 《현성암중수기》와 《현성암중수각부탱화신성기》가 남아 있고, 대웅전에는 아미타불을 그린 탱화와 영산회상도, 신중탱화, 독성탱화, 지장시왕탱화, 현왕탱화가 걸려 있다. 모두 1882년 서린이 중수할 때 제작된 유물들이다.

[筆者: 丙燮]


[참고문헌]「양주군지」「백과사전」


1 見: 볼견, 뵈올현 자(字)이다. 따라서 ‘성인(聖人)을 암자에서 뵙다 또는 만나다.’라는 뜻에서 "현"으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