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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이야기 > 풍양의 유래 > 시중공 영정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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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공의 영정과 동상

시중공 영정
시조인 시중공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에는 전하는 것이 없고 조선왕조 중기 이후에 성리학을 정신적 지주로 삼고있는 학자 및 후손들의 기록이 전부이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시중공의 탄생과 삶은 설화적이며 신화적인 요소가 강하게 풍긴다. 시중공께서 약사여래(藥師如來)를 친견하였다던가 산신령이 되었다던가 하는 설화적인 말들은 그곳에 사는 순박한 주민들에 의하여 구전되어온 이야기들이다. 고려 태조와 제우(際遇)하였다는 바위굴은 시중공께서 불도(佛道)를 닦다가 득도(得道)를 하였다는 수양굴이며, 그곳을 수호하기
시중공 동상
위해 후손들이 지었다는 암자를 현성암이라고 하지 않는가!

시중공의 영정(影幀)은 어느 시대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없으나 운석공(雲石公) 인영(寅永)이 집안 대대로 소중히 보관해 내려오던 것을 고종19년(1882) 현성암에 기증을 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불교적 신앙대상이 되는 존상(尊像)인 산령 탱화(山靈 幀畵)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동상은 그 이후 영정을 모델로 하여 1975년 7월에 풍양조씨화수회에서 주관하여 제작한 작품으로 시중공이 기거하던 수양굴에 봉안(奉安)되어 있다.

당시 사대부가에서는 불교와 무속신앙을 배격하며, 가까이 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었다. 따라서 시중공에 대하 기록은 극히 제한적이며 사적(事績)이 극히 집약되어 현존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다.

[筆者: 丙燮]


[참고문헌]『조남권, 풍양조씨문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