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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이야기 > 분묘수호의 역사 > 예조의 회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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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조회계(禮曹回啓; 예조에서 회답한 계품)


선원공 김상용의 영정
예조에서 회답하기를 (판서 김상용[金尙容])
“지난번 부호군 조수이(趙守彛) 등이 상소한 내용은 그들 시조 조맹 묘소에 관한 것입니다. 혼조(昏朝; 광해군을 지칭함)때에 공빈을 추존, 묘를 승격시켜 능으로 삼자 동묘(同墓)가 앞에 있음으로 해서 결국 그 산소를 평장(平葬)시켰습니다. 그러나 반정(反正; 인조반정을 뜻함) 후에 공빈묘의 능호가 이미 혁파되었으므로 자손들이 그 산소를 복원하고자 정소(呈訴; 소장(訴狀)을 관청(官廳)에다 바침) 하였습니다. 이에 헤아려보건대 선조의 하교(下敎)에도 『조맹은 나에게도 외조 』라 하여 그 묘소를 유지하였습니다. 따라서 능호(陵號)가 혁파되었으니 사리(事理) 상으로도 마땅히 그 땅을 원상 회복하여 묘의 형태를 되찾도록 해야 할 것이며, 조정에 상소조차도 할 필요가 없는 사안(事案)입니다. 자손들의 요청대로 무덤을 봉하고 표석(表石)을 세우도록 윤허(允許)하여 전 시대에 공이 있던 어진 신하를 정표(旌表)가 되게 함이 어떠하신지요?” 하답하기를 “계품(啓稟)에 의거하여 처리하라” 하였다.

[編輯: 丙燮]


[참고문헌] 조남권번역 「풍양조씨세록(豐壤趙氏世錄) 一」풍양조씨화수회, 1981



김상용 [金尙容, 1561~ 1637]
조선 인조 때의 상신(相臣)이며, 병자호란 때의 순절인(殉節人). 본관은 안동. 자는 경택(景擇), 호는 선원(仙源)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 극효(克孝)의 아들이며, 좌의정 상헌(尙憲)의 형, 1582년(선조 15)진사가 되고 159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인조반정 뒤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기용되었고, 이어 병조·예조·이조의 판서를 역임하였으며, 정묘호란 때는 유도대장(留都大將)으로서 서울을 지켰다. 문집으로 《선원유고》 7권이 전하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