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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양조씨이야기 > 분묘수호의 역사 > 분묘봉변 알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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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봉변시통문(墓所逢變時通文)


서울과 시골이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연락이 되지 않아 좋은 일이던 언짢은 일이건 간에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경조사(慶弔事)에도 예절을 갖추지 못하니, 애초에는 한 몸에서 분파(分派)된 친족이 이제는 남과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종친간에 의논할 일이 있을 때 마다 이 같이 되지는 말아야지 했는데 서로간에 경모(傾慕; 마음을 기울여 사모(思慕)함)만 할 뿐 만날 길이 없음을 한탄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뜻 밖의 일을 당하였기에 그 사정을 간략하게 보고 드립니다. 선대 시중고의 묘소가 풍양에 계신데 성능(成陵)으로 추숭(追崇; 왕위(王位)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제왕의 칭호(稱號)를 올림) 함으로 인해서 봉내(封內)에 있는 개인 분묘는 모두 이장을 요구함에 따라 선조의 분묘도 또한 퇴거 대상 중에 들었습니다.

7백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비통한 일을 당하였으니 일문(一文)의 불행을 어찌해야 합니까? 무릇 천묘(遷墓)란 것은 수십 년만 지나도 손댈 수 없는 것이거늘 하물며 세월이 오래되어 시신이 이렇다 할 형체도 없을 것인데 앞으로 어떻게 최선의 계획을 세워 이안(移安; 신주(神主) 영정(影幀), 소상(塑像) 따위를 딴 곳으로 옮기어 모심)할 수 있을지 서글프기만 합니다. 그러나 사세(事勢)가 이쯤 되었으니 아니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장에 필요한 소요품목을 자손되는 종친께서 각출해야 할 것 같은데 서울에 있는 종친은 극히 적고 외읍(外邑)에 산재한 사람도 변변치 못하므로 재정이 빈약하여 일을 치르지 못하니 매우 민망스럽습니다.

상주(尙州), 임천(林川), 해주(海州) 등지에 사는 분을 통틀어야 수십 인에 그치지만 벌써 통보가 되었으며, 각자 현지에 성실하고 자발적인 유사(有司) 1~2인을 선정하여 물자(物資)을 수합하여 가지고 미리 회합하도록 하였습니다. 제종형(諸宗兄)께서도 또한 이 예와 같이 상의해서 잘 조치하시면 어떠한지요? 오래된 묘는 이전한다는 것이 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사로운 이런 곡절을 관하에 진달(進達; 중간 관청에서 관하(管下)의 공문 서류를 상급 관청으로 올려 보냄)하여, 다만 그 봉분만 삭쳐서 평평하게 할 수 있다면 그래도 파냄으로써 생기는 말할 수 없는 송구함보다는 낫겠다고 보는데 만약 이 말이 실현된다면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겠습니까? 이 모두를 논의하여 지도 부탁 드립니다. 또한 문중에서 논의할 일은 “ 종친 수십 명이 최선을 다해 수합(收合)한다 해도 분명히 대사(大事)를 치르기에는 부족할 것 같으니 외손들 에게도 각자 약간의 미포(米布)를 부조하도록 부탁 드렸으면 하니” 여러분들도 검토하고 시행토록 부탁 드립니다. 능역(陵役)은 중국사신이 돌아가기 전까지 마친다 하고 8월, 10월 길삭(吉朔)이라고 하니 모든 일을 불가불 서둘러서 결정해야 할 텐데 동서(東西)로 흩어져 살고 있으니 극히 염려스럽습니다.

장지(葬地)는 풍양에 사는 산림(山林)으로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능역의 기일이 결정되는 대로 곧 재 통보하겠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 회답이 지연된다면 훗날 후회가 될 것이니 이 통지가 도착되는 대로 곧 바로 각항의 사안을 토의하여 합의된 결과를 회답하여 주시고, 또 보내주실 물자의 수량을 결정하여 회신하는 편지에 기록하여 주시면 행심행심(幸甚幸甚) 입니다.

[編輯: 丙燮]


[참고문헌] 조남권번역 「풍양조씨세록(豐壤趙氏世錄) 一」풍양조씨화수회, 1981



조척 [趙 滌, 1573 ~1616]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사신(士新), 창강(滄江) 속(涑)의 큰 형님이며, 수륜(守倫)의 아들이다.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