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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서화(書畵)
포저 조익은 선조12~ 효종6 조선후기 문신이며, 대학자로 글씨 및 사군자화(四君子畵)에도 남다른 재능을 보이고 있다. 6세 때 이미 ‘독서를 하였는데 문리(文理)가 날로 진취(進就)하였으며 글씨와 그림도 모두 기이(奇異)하였으므로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는 송준길이쓴 행장(行狀)에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잦은 전난(戰亂)과 후손들의 관리소홀로 그림은 3점이 전해지고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죽도(靑竹圖), 후손이 묵매도(墨梅圖), 그리고 안타깝게도 일본 소창분화재단(小倉文化財團)에 죽석도(竹石圖)가 소장되어 있다. 포저는 포저집(浦渚集)에 수록되어 있는 서화매장자(書畵梅障子)라는 발문에서 묵매도를 그린 배경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도 소실하지 않은 기이한 그림이라며 자손들이 잘 보관하라는 당부의 말씀이 있다.

창강 조속은 1595(선조 28)∼1668(현종 9). 조선 후기의 서화가이다. 그는 풍채가 맑고 깨끗하였을 뿐 아니라 지조가 높고, 또한 청빈하여 칭송 받았다. 때로는 끼니를 걸러야 하는 가난함에도 구애치 않았으며, 고금의 명화와 명필을 수집, 완상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로 일컬어졌으며, 그림은 매(梅)•죽(竹)•산수와 더불어 수묵화조(水墨花鳥)를 잘 그렸다. 대표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노수서작도 老樹棲鵲圖〉와 〈매도〉, 간송미술관 소장의 〈매작도 梅鵲圖〉 등이 있다.

매창 조지운은 1637(인조 15)∼? 조선 중기의 선비화가이며 창강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화풍을 계승하여 선비의 기풍과 심의(心意)가 가득한 묵매와 수묵화조를 잘 그렸다. 그의 묵매화는 아버지를 비롯한 조선 중기의 묵매화법을 고루 갖춘 그림으로, 주로 직립식과 사선식의 구도를 사용하였으며, 거칠고 성근 필치를 애용하였다. 수묵화조에서도 간결한 구도와 사의적인 분위기 등 아버지의 화풍을 충실히 따랐다. 유작으로는 숙조도(宿鳥圖)•매죽영모도(梅竹翎毛圖)•송학도 (松鶴圖)• 묵매도(墨梅圖) 등이 남아 있다.

송창 조종운은 1607(선조 40)∼?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창강의 조카이다. 관직은 찬선을 지내고, 글씨를 잘 썼으며, 보학(譜學)에 밝아 《씨족원류 氏族源流》를 저술하였다.

[編輯: 丙燮]


[참고문헌]
1. 「풍양조씨세보(豐壤趙氏世譜) 상」풍양조씨남원공파종회, 1996
2.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people.aks.ac.kr/
3. 디지털한국학 http://koreandb.kdaq.empas.com/
4. 명품도감, 국립중앙박물관 편, 삼화출판사, 1985
5. 한국의 미 11 산수화(상), 안휘준 외 편, 중앙일보사, 1980
6. 국보 10 회화, 안휘준 편저, 웅진출판, 1992










포저(浦渚)의 작품세계
청죽도(靑竹圖) 조선,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면의 중앙을 수직으로 뻗어 올라 상단에서 갑자기 꺾여 수평으로 향하고 있는 대나무를 그린 이 그림은 윤곽선으로 그 형태를 묘사하고 그 안에 청록으로 채색한 구륵법(鉤勒法)을 구사했다. 화면의 오른편에는 마디 부분의 생태를 정확히 파악해 보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굵은 대나무가 담묵으로 그려져 있다.
滄江의 작품세계
노수서작도(老樹棲鵲圖) 17세기 족자비단에 수묵 113.5 x 58.3cm 국립중앙박물관





「노수서작도(老樹棲鵲圖)」는 그의 명성과 화풍상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구성은 활 모양으로 휘어진 가지 위에 앉아 있는 한 쌍의 까치를 중심으로 짜여있다. 여러 요소들이 화면의 왼쪽 아래편에서 오른쪽 윗편으로 이어지는 사선으로 포치되어 있으면서도 나무의 곁가지들이 맞은편의 여백으로 뻗어나 있어 전체 구도를 안정시키고 있다. 모자이크식으로 반복된 세모꼴의 나뭇잎에는 명대 임량(林良)의 영향이 느껴지지만, 성글고 까칠까칠한 필치와 평면적으로 처리된 형태들이 자아내는 야취(野趣) 어린 분위기는 초탈한 그의 마음을 대하는 듯하다. 특히 담담하고 깔끔한 느낌의 윤기 없는 먹빛 효과는 화면에 문기(文氣)를 더하며 격조를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화풍은 조선시대 특유의 정취 짙은 서정 세계와 상통되는 것으로 아들 조지운과 전충효, 이함, 이하영 등에게로 이어졌다.
수금도(水禽圖) 17세기 족자종이에 수묵 95.6 x 56.3cm 국립중앙박물관



창강공은 문기(文氣)와 의취 넘치는 필치로 까치와 같은 새들을 즐겨 다루었으나, 그의 전칭작인 이 수금도와 같이. 안온한 정취가 물씬 풍기는 화조화도 곧잘 그린 것으로 여겨진다. 연지수금류(蓮池水禽硫)에 속하는 이 그림은. 단편적인 묵면으로 이루어진 형태들이나. 규칙적으로 반복된 붓질 등이 대체로 형식화되고. 경직된 느낌을 주고 있지만. 이들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는 매우 서정적이다. 둥근모양의 수초(水草)라든지 세모꼴의 잎사귀들. 그리고 물에 밑둥이 잠긴 나뭇가지 위에 앉아. 수면을 내려다보고 있는 새와. 트여진 공간을 향해 날아오르는 새등. 모두가 한국적 정서의 세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 조선 초기와 중기 동물화의 세계와 상통되는. 이러한 수묵화조풍은 이징(李澄)과 윤신지(尹新之), 김식(金埴)등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주로 산새를 소재로 삼았을 때보다는 수금류를 소재로 삼아 다루었을 때 더 많이 발견된다.
매작도(梅鹊圖) 17세기 족자종이에 수묵 100.4 x 55.5cm 간송미술관 


희보춘선(喜報春先)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매화와 까치를 소재로한 이 매작도 에는 조속의 깊은 의취가 어느 그림보다 잘 나타나 있다. 눈서리를 무릎쓰고 맨 먼저 봄의향기를 터트린 매화 한 그루가. 화면의 하단 중앙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휜 상태로 솟아있고. 그 노간(老幹)의 한가운데에는 봄소식을 전하려는듯. 한 마리의 까치가 긴 꼬리를 내린채 앉아있다. 힘차게 뻗어있는 매화의 끗끗한 모습과 몰골(沒骨)의 강건한 농묵의 붓질로 깃털을 다듬은 까치의 의연한 자태에는. 어둡고 추운 겨울과 같은 시절을 살면서도. 기개를 잃지않고 봄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그의 곧은 심지가 짙게 깔려있다. 먹빛의 조화와 심의에 찬 까치의 기상. 그리고 어몽룡(魚夢龍)의 묵매법을 받아들여 나타낸. 맑은 매화의 모습이 잘 어우러져. 화면에는 문기(文氣) 짙은 고담한 정취가 감돈다.
금궤도(金櫃圖) 비단에 채색 105.5cm x 56cm 국립중앙박물관 1635(인조 13)





창강공(滄江公)은 그림에 낙관을 피하여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 밝힌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금궤도(金櫃圖)」는 그림 윗면에 이 그림의 뜻과 화가의 이름이 명기된 귀중한 회화사료이다. 그림 중앙에 큰 소나무가 있고 나무에 금궤가 매달려 있으며, 그 밑에 흰 장닭이 목을 빼어 울고 있다. 금궤 속에서 나온 분이 바로 신라의 석씨(昔氏) 왕을 계승한 김씨 왕계의 시조(始祖)라는 고사(故事)를 그린 것이다. 때문에 이 그림을 때로는 「계림고사도(鷄林故事圖)」라 부르기도 한다. 청록산수(靑綠山水)에 농채(濃彩)를 써서 정중하게 그렸다. 수묵(水墨)이나 수묵 담채(水墨淡彩)의 산수와는 포치와 준법 등이 다른 감이 있어 오히려 여기에서 17세기의 정확한 청록 산수의 화법을 알 수 있다.
매창(梅窓)의 작품세계
매상숙조도(梅上宿鳥圖) 17세기 족자종이에 수묵109 x 56.3cm 국립중앙박물관





「매상숙조도」에는 그런 매창공의 화풍이 잘 나타나 있다. 매화 가지 위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고 있는 새를 묘사하였는데, 뛰어난 구성미를 보여준다. 매화 가지와 대나무가 반원을 그으며 뻗어 있고, 그 한가운데에 새가 앉아 있어 야무진 구도를 이루고 있다. 대나무와 매화도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화풍을 보여준다. 아주 간결한 구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허술한 구석이 없어 매창의 뛰어난 기량을 확인할 수 있다.
숙조도(宿鳥圖) 17세기 족자종이에 수묵 78 x 50cm 개인소장





왼편에서 뻗어 나온 대담하고 활달한 필력의 매화 가지가 하나는 반원의 형태로 다른 하나는 화면 우측 상단을 향해 직선적으로 묘사되었다. 비백체(飛白體)와 묵점으로 표현된 이 매화 가지들은 조선 중기에 이룩된 묵매 양식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준다. 대담한 구성과 활달한 필치에는 문기(文氣)가 배어들어 작품의 격을 한껏 높여 주고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한 점 소장되어 있는 「매상숙조도」와 화풍이 유사하다.
송학도 (松鶴圖) 17세기 비단에 채색 67.8 x 59.7cm 국립중앙박물관

본래 송학도(松鶴圖)의 도상(圖像)은 두 가지 제작 동기가 있는데 하나는 선비들이 지님직한 고결한 인품과 꿋꿋한 기상을 은유적으로 빗대어 그린 것이고, 또 하나는 송학을 장수의 상징이나 상서러운 분위기로서 포착하는 것이다. 궁중에서 정초에 대신이나 관아에 내려주는 그림인 세화의 하나로 추측되는 작품으로 규격이 매우 특이하고, 비단 바탕인 점이 그러한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는 흔히 청록진채(靑綠眞彩)로 그려지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17세기 절파풍(浙派風)이 완연한 수묵 화조화를 기본 골격으로 하여 갈색과 담청(淡靑)으로 사실성을 더해준 다음, 학의 정수리를 붉게 채색하여 단정학(丹丁鶴)으로 나타내면서 강한 악센트를 주고 있다. 힘차게 꺾어 뻗친 소나무 줄기의 강인하면서도 연륜을 느끼게 하는 멋은 이른바 절파풍의 호방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지만, 학의 두 다리가 조금 멋적고 어색하다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화풍으로 보아 17세기로 추정되지만 하단의 도인(圖印)은 위치로 보아 후락(後落)일 가능성이 크다.



묵매도(墨梅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