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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관조씨물상혼가의(三貫趙氏勿相婚嫁議)

임천(林川) 구보(舊譜)에서 각각의 본(本)을 상고하건대 이르기를 “풍양(豐壤), 한양(漢陽), 양주(楊州)의 조씨는 같은 근원(根源)에서 분파되었다1.”하였으니 추측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풍양•한양•양주는 본래부터 한 고을이었다2. 그러므로 우리 풍양조씨가 조선 중엽에 봉작(封爵)3 을 받을 때에 더러 한양(漢陽)을 훈호(勳號)를 삼았고 시권(試券)4 에서는 더러 양주(楊州)로 본관(本貫)을 쓰기도 하였으니 이런 사례에 본다면 세 관향(貫鄕)의 조씨 또한 어찌 일원(一源)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창령(昌寧)의 로상(路上)•로하(路下) 성씨(成氏)5 가 처음에는 자신들이 이르기를 “원류가 같지않다.”하여 남자는 장가가고 여자가 시집갔었는데 추후에 먼 대(代)의 비문(碑文)이 발견되어 하나의 족보로 통합하였으니 그렇다면 우리 풍양조씨가 한양이나 양주조씨와 혹시라도 장가들고 시집을 간다면 예의(禮義)와 법도(法道)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앞으로는 풍양•한양•양주조씨는 절대로 서로 혼인(婚姻)하는 것을 금(禁)해 성씨(成氏)의 교훈을 잊지 말도록 해야 한다.

[참고문헌]「豐壤趙氏世譜」파보 병자,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