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login
Top home
참판공파 세보 > 세보 이야기 > 세보의 종류와 명칭


+ 성씨의 역사


+ 세보 이야기


+ 역대세보 서발문


+ 참판공 세계분파도


+ 세보검색


+ 조상묘 검색


세보의 종류와 명칭

가계의 기록 혹은 가족계보의 서(書)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개별적인 가계기록인 가첩(家牒)•가승(家乘)•내외보(內外譜)•팔고조도(八高祖圖) 등도 족보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가첩이나 가승은 동족 전부가 아닌 자기 일가의 직계에 한하여 발췌, 초록한 세계표를 지시하는 것으로 구분하기도 하나, 대체로 족보와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족보는 족보에 수록되는 동족의 범위에 의하여 족보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한 동족(동성동본) 전체의 계보를 망라하는 대동보(大同譜)와 한 동족 안의 한 분파(分派)의 세계에 한하는 파보(派譜)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리고 한 동족 이상의 동족을 포함하는 국내 족보 전반을 망라한 계보서가 있다.

족보의 구분과 관계가 있는 족보의 명칭을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것을 기준으로 조사하여 보면, 세보(世譜)•족보•파보를 비롯하여 60여 종이나 된다. 이를 빈도 순으로 보면 「세보」라는 명칭이 가장 많다. 다음이 족보, 파보의 순서인데, 이 세 가지를 합하면 전체의 8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 흔하게 쓰는 「종보(宗譜)」라는 명칭은 보이지 않지만, 베트남이나 일본 류큐제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가보(家譜)」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풍양조씨는 창간보부터 지금까지 「풍양조씨세보(豐壤趙氏世譜)」라는 명칭을 대동보, 파보 구분없이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한 동족 이상의 동족을 포함하는 국내 족보 전반을 망라한 계보서로는 「청구씨보(靑丘氏譜)」•「잠영보(簪纓譜)」•「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등이 있다. 「조선씨족통보」는 「동국문헌비고」의「성씨록(姓氏錄)」에 준하여 여러 성씨의 본관과 분파의 연원 등이 기재되어 있고, 그 밖의 것은 모두 족보를 가진 동족의 세계표를 거의 다 망라하고 있다.

세보 또는 족보의 체재

풍양조씨 족보판목
족보의 조직이나 내용에 관해서는 족보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그 편집은 일정한 원칙과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공통점이 있다. 족보의 내용을 대략 기록의 순서에 따라 구성요소로 나누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서(序)와 발(跋) 서는 족보의 권두에 실린 서문이며, 족보일반의 의의, 동족의 연원•내력, 족보편성의 차례 등을 기술한다. 발은 서와 거의 다름이 없는데, 다만 편찬의 경위가 좀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다른 동족원 일지라도 세상에 이름난 사람에 의하여 쓰여진 것도 있으나, 흔히는 직계후손의 학식 있는 사람 중에서 이를 기술하는 것이 보통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증보•수정하게 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구보(舊譜)의 서와 발을 수록한다. 또한 파보 등의 지보(支譜)에는 종보(宗譜)의 것을 그대로 재록한다.

(2) 기(記) 또는 지(誌) 시조 또는 중시조(中始祖)의 사전(史傳)을 기재한 것으로 현조(顯祖)의 전기•묘지(墓誌)•제문•행장•언행록•연보 등을 기록한다. 또한 시조전설, 득성사적(得姓事績), 향관(鄕貫), 지명의 연혁, 분파의 내력 등을 자세히 기록하기도 한다. 간혹 그 조상에게 조정에서 내린 조칙이나 서문(書文)이 있으면 명예롭게 이를 수록한 것이 있다.

(3) 도표 시조의 분묘도(墳墓圖) 시조 발상지에 해당하는 향리의 지도, 종사(宗祠)의 약도 등이다. 선조의 화상 같은 것은 별로 없다.

(4) 편수자 명기(名記) 대개는 족보의 편수를 담당한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한다. 어떤 파보에는 거기에 참여한 다른 파의 유사(有司)도 기입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 명예를 표창하는 동시에 기록의 정확을 기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5) 범례 일반 서적의 범례와 같이 편수기록의 차례를 명시한 것인데 기록의 내용을 아는 데는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그 가운데에는 가끔 가규(家規) 또는 가헌(家憲)과 같은 범례 이상의 것이 포함된 것도 있다.

(6) 계보표 족보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으로 전질(全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문•기•도표•편수자 명기•범례 등은 첫째 권의 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고 나머지 전부는 이 계보표로 이루어져 있다. 기록양식은 조선 초기의 족보를 비롯하여 명청(明淸)의 족보 기록양식을 모방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수록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시조부터 시작하여 세대 순으로 종계(縱系)를 이루고, 그 지면이 끝나면 다음 면으로 옮아간다. 이때 매 면마다 표시(예를 들어 천자문의 한 자씩을 차례로 기입)를 하여 대조에 편리하게 한다.

각각의 사람에 대하여는 그 이름•자호•시호•생졸(生卒) 연월일•관직•봉호(封號)•과방(科榜)•훈업(勳業)•덕행•충효•정표(旌表)•문장•저술 등 일체의 신분관계를 기입한다. 특히 이름은 반드시 관명(冠名)을 기입하는데, 그 세계 (世系)와 배항(排行)에는 종횡으로 일정한 원칙에 의한다. 자녀에 관하여서는 특히 후계의 유무, 출계(出系) 또는 입양(入養, 親生子는 ‘子00’, 양자는 ‘繼00’라고 적는다), 적서(嫡庶)의 별, 남녀의 별(여자는 이름을 적지 않고 사위의 성명을 기입함) 등을 명백히 한다. 또 왕후 또는 부마가 되면 특히 이를 명기한다. 분묘의 표시, 그 소재지, 묘지(墓誌), 비문 등을 표시하고, 특히 시조의 묘지를 선영(先瑩) 또는 선산(先山)이라고 칭한다.

풍양조씨의 창간범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매편(每編) 첫머리인 제1행(第一行)에는 풍양조씨세보(豐壤趙氏世譜) 권지기(卷之幾)라 쓰고, 제2행(第二行)은 모임휘(某任諱) 모파(某派)라 기록하데 ○ 표를 넣어 구분하고, 제3행에는 세수(世數)를 쓰데 세수를 쓰는 줄의 맨 윗 난(欄)에 각기 선세계통(先世系統)을 써서 그 소자출(所自出; 유래(由來)한 곳)을 명시하였고, 매판(每板)마다 천자문으로 일련번호를 매겼고, 횡(橫)으로 6개 난(欄)을 그어 6대(六代)까지 쓰데 맨 하난(下欄)에는 이름 밑에 다음 편의 번호만을 표기하고 다음 편의 상란에 차례대로 쓰고 방주(傍註)를 좌측 예와 같이 달았다. 또한 상편(上篇)의 번호를 표기하여 색인을 편리하게 하였는데, 자손이 번성치 못한 파는 이러한 범례에 불구하고 제팔위(第八位)에 해당되는 명자(名字)를 맨 윗란에 쓰고 제1행 옆에 그의 부모 명(名)을 써서 구분하였으며, 각행에 그 대수(代數) 만을 써서 구별하였다.

각자 명자(名字) 아래에는 반드시 기자기녀(幾子幾女)라 쓰고 서자녀(庶子女)도 이와 같이 쓰데 그 쓰이는 판수(板數)가 너무 많아 찾아 보기가 어려운 곳은 그 자녀의 이름 위에 모(某)의 기자(幾子)라 써서 각파로 하여금 책을 펴기만 하면 환히 알게 하였다.

각기 자녀는 한결같이 연치장유(年齒長幼; 나이와 어른과 아이) 순서로 썼다.

휘자(諱字) 옆에 자(字; 별호(別號)가 있으면 또한 썼다), 과제(科第; 모년모과(某年某科) 생원∙진사 등), 관작(官爵)∙생졸년(生卒年;생년과 졸년월일을 알면 다 쓰고 내외를 막론하고 연령이 70 이상이면 특별히 수기(壽幾)라 썼다.), 근거할 만한 현저한 행적, 배위(配位;죽은 아내의 경칭))의 성관(姓貫;성과 이름) 아버지 이름(모든 관작(官爵)을 쓰고 선대 유명인 또한 쓰고 후취(后娶)가 있으면 재실(再室) 삼실(三室) 등으로 쓰고 출생한 자녀의 수를 각각 써서 그 소출(所出)을 밝혔다.), 그리고 묘지의 소재(所在)를 갖추어 썼다. 생존인의 관직이 있으면 금자(今字) 혹은 전자(前字)를 첨가하여 쓰고 국계(國系)와 혼인이 있으면 해당하는 곳에는 ○표를 하고 그 위 최상난(最上欄)에 별도로 기록한다.

자식이 없으면 무후(无后)라 쓰고 계자(繼子; 양 아들)를 하였으면 본가(本家)의 이름 하단에 출계(出繼)라 쓰고, 그 자손을 후사(後嗣)로 잇는 파에도 써서 계체(繼體)의 의(義)를 중하게 하였고, 쌍방간에 각각 천자문 번호를 써 넣어 색인을 편하게 하였다.

여서(女婿)의 성관(姓貫), 부명(父名), 과제(科第), 관작(官爵; 생존하였으면 금자(今字) 또는 전자를 가한다), 선대의 유명인 또한 썼고, 전실(前室) 또는 후실(後室)이면 구분하여 써서 소출(所出)이 서로 혼동되는 폐단이 없게 하였고 자녀가 없으면 무후(无后)라 쓰고, 계자(繼子)가 있으면 계자라 섰다.

외손파가 번성하여 다 실을 수 없으면은 외손에 한하여 기록하고 외증손은 각기 외손의 이름 옆에 기록하였다.

종족(宗族)이 외지에 산재되어 있는 곳에는 읍호(邑號)나 지명(地名)을 써서 반드시 각각 그의 사는 곳을 알게 함으로써 친척간에 의를 잃지 않도록 하였다.

향리에 기거하는 성족(姓族)으로서 대수를 댈 수 없으나 그 윗대가 시조에 속하여 풍성(豐城; 풍양과 같음)이란 본관을 같이하는 이는 별보(別譜)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여 종족을 어우르고 배려하는 풍속의 의를 표시하였다.

이상에서 대략적인 족보체재의 내용을 설명하였는데, 물론 종족 또는 시대에 따라 그 내용이 다르기도 한다. 또한 한 족보에 있어서도 각각의 가족상황을 기입한 단자(單子)의 내용에 따라 내용의 기록이 자세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