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login
Top home
참판공파 세보 > 참판공 세계분파도 > 개요


+ 성씨의 역사


+ 세보 이야기


+ 역대세보 서발문


+ 참판공 세계분파도


+ 세보검색


+ 조상묘 검색


풍양조씨세보(豐壤趙氏世譜)


풍양조씨세보권지일(豐壤趙氏世譜卷之一)

豐壤縣在楊州治東五十里本高句麗骨衣奴縣新羅景德王改名荒壤爲漢陽郡領縣高麗改豐德顯宗九年屬楊州後屬抱州朝鮮世宗元年復來屬楊州

풍양현은 양주의 치동(현 의정부의 동쪽) 50리에 있는데 고구려의 골의노현이었고 신라경덕왕 때에 황양이라 개명하여 한양군(현 서울특별시)령현으로 삼았고 고려 때에 풍덕이라 고쳤고 현종 9년에 양주에 배속되었다가 후에 포천(현 포천)에 배속되었고 조선 세종 원년에 다시 양주에 배속되었다.




始祖

조맹(趙孟)


公初諱巖漢陽府豐壤縣人高麗開國功臣位至門下侍中平章事賜今名○墓豐壤赤城洞寅坐今南楊州市眞乾邑松陵里山五三番地四號○墓後數十步許有宣廟朝恭嬪金氏墓墓所經變曲折及遺事墓文詳載世錄○有墓碣外後孫左議政張維撰掌令李 書錦陽尉朴瀰篆碑陰後孫左議政翼記校里吳竱書墓表後孫大提學復陽撰○庚辰譜曰尙州譜以散員國臣太師添書公官御而他無可據姑錄于下


공초휘암한양부풍양현인고려개국공신위지문하시중평장사사금명○묘풍양적성동인좌금남양주시진건읍송능리산53번지4호○묘후수십보허유선묘조공빈김씨묘묘소경변곡절급유사묘문상재세록○유묘갈외후손좌의정장유찬장령이 서금양위박미전비음후손좌의정익기교리오전서묘표후손대제학복양찬○경진보왈상주보이산원국신태사첨서공관어이타무가 고록우하



갑편(甲編)

此下六世諱字見逸
庚辰譜曰麗史列傳載石磵公自製墓誌有曰云仡爲太祖功臣平章事趙某三十世孫故宗中舊譜據此爲信以石磵公六代祖殿直公諱之藺爲平章事公二十四代孫云然以年代考之石磵公乃麗朝四百一二十年後人也四百一二十年之間延世三十萬不近理矣或取許僉正涵百家譜註以爲三十代之三字無乃二字之誤耶云然世系代數至重至大臆以爲說巳極未安況以他家譜牒考之仡麗朝終始俱不過十餘代則獨於吾家世代豈至二十代之太促乎近按後孫翊贊從耘所撰氏族源流則始祖下直書七代孫之藺又略載石磵公自製墓誌曰平章事趙某十三代孫云以此觀之麗史所載必是傳寫時倒書十三兩字爲三十而舊譜所錄亦是因襲之失矣今從氏族源流爲正

경진보 가로되 고려사열전에 석간공(石磵公)의 자제묘지(自製墓誌)를 기록하였는데 있기를 운흘(云仡)은 태조 때의 공신 평장사 조모(趙某)의 30세손이 된다. 하였으므로 종중의 구보(舊譜)들이 이를 근거로 믿어 석간공의 6대조 전직공(殿直公) 휘지린(諱之藺)으로 평장사공의 24대손이 된다. 하였으나 그러나 대수로 상고하건데 석간공은 고려조의 410~420년 후인이니 410~420년 동안에 30대나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은 허첨정(許僉正) 함(涵)이 지은 백가보주(百家譜註)의 기록을 취하여 30대의 3자는 2자의 오자(誤字)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으나 그러나 세계의 대수는 지중지대(至重至大)한 문제로서 억측으로 말을 하는 것도 지극히 미안(未安)한 일이거든 하물며 타가(他家)의 보첩으로 상고할 수 있겠는가? 려조가 마칠 때까지 시종 모두 10여대에 불가한 즉 홀로 우리 집 세대만이 20대나 많이 나가게 되겠는가? 근간에 후손 익찬(翊贊) 종운(從耘)이 지은 씨족원류(氏族源流)를 상고한 즉 시조 밑에 곧바로 7대손 지린이라 쓰고 또 석간공의 자제묘지를 요약해서 싣기를 평장사 조모의 13대손이라 하였으니 이것으로 본다면 고려사에 수록된 것은 필시 전사(傳寫)할 때에 13(十三) 두 자를 꺼꾸로 써서 30(三十)이라 하였고 구보의 기록들도 또한 이를 인용한 실수일 것이다. 이제 씨족원류에 따라서 바로 잡는 바이다.



을편 제1(乙編第一)

庚辰譜曰今依氏族源流釐正代數則殿直公諱字傍當以八世書之而但中間六世諱字失傳故從辛亥刊譜傍計代數自殿直公始

경진보에 가로되 이제 씨족원류에 의하여 대수를 이정(釐正)하였으므로 전직공 휘자(諱字) 곁에 8세(八世)로 써야 할 것이나 다만 중간 6세(六世) 휘자가 실전 되었으므로 신해간보(辛亥刊譜)의 방계대수를 따라서 전직공으로부터 시작한다.


孟 後孫

一世 지린(之藺)


天和寺殿直許譜云天和寺下疑脫眞殿二字○公爲侍中公七代孫旣有可據之書則公之諱上更書姓字實無義意故以後孫二字書之○墓失傳○一子○庚子譜曰按庚辰譜凡例曰譜板之爲八井者始祖以下代數旣己可計則難六世諱字見逸不傳而當位之井不敢不虛云矣丙戌改七井故殿直公書于乙編第二井以存六位不敢不虛之義


천화사전직허보운천화사하의탈진전2자○공위시중공칠대손기유가거지서칙공지휘상경서성자실무의의고이후손이자서지○묘실전○1자○경자보왈안경진보범례왈보판지위팔정자시조이하대수기기가계칙난6세휘자견일불전이당위지정불감불허운의병술개7정고전직공서우을편제2정이존6위불감불허지의



을편 제2(乙編第二)

庚辰譜曰始祖以下天和寺殿直公之藺派平章公臣赫派繁且顯而殿直公派失傳世數旣有可据而爲始祖不遠之孫故自一卷始書平章公派世系失傳代數無稽而平章公孫副正公玗始仕本祖殿直公六代孫淮陽公愼寔是我太宗甘盤之舊副正公輿淮陽公旣是一時之人則平章公爲始祖稍遠之孫可推而知故自第二十五卷始書而到今彼此行序雖不可計而惟以時世歸重合成於世系分派之圖至於編名淮陽公之祖郞中公旣入於乙編第五井則副正公之祖平章公亦當入於乙編第五井故以此爲準又起乙編名以第二而亦依時代自第五井始書以寓合宗之義○丙戌譜曰今改七井而郞中公入於乙編第六井故平章公亦依此書於第二乙編第六井

경진보(庚辰譜)에 가로되 시조이하에 천화사 전직공 지린파(之藺派)와 평장공 신혁파(臣赫派)가 번창하고 현달도 하였는데 전직공파 세계(世系)는 실전한 세수(世數)를 고증할 수가 있어 시조의 멀지 않은 후손임을 알고 있으니 제1편 썼고, 평장공파(平章公派) 세계는 실전한 대수를 상고할 수 없으나 평장공의 손자 부정공(副正公) 우(玗)께서 조선조(朝鮮朝)에 벼슬을 하였으며 전직공의 6대손 회양공(淮陽公) 신(愼)은 태종(太宗)의 스승이었으니 부정공과 회양공은 동시대의 인물이다. 따라서 평장공은 시조로부터 먼 자손이 됨을 추지(推知)할 수 있으므로 제25권부터 시작하였다. 현재로선 서로간의 항렬(行列)은 따질 수 없으나 오직 시대성을 중요시 여겨 세계분파도(世系分派圖)를 합성하였고 보첩의 편명(編名)에서는 회양공의 조부인 낭중공(郎中公)을 을편(乙編)의 제5난에 기록하였으므로 부정공의 조부(祖父)인 평장공 또한 그렇게 함이 타당하다. 따라서 을편을 설치하되 제2(第二)라고 명하고 탄생년대를 고려하여 제5난(第五欄)부터 시작하니 이로서 `합종(合宗)의 의(義)를 표한다. ○ 병술보(丙戌譜)에 가로되 이번에는 7난(七欄)으로 하였으며 낭중공(郎中公)을 을편의 제6난에 기록하였기에 평장공도 또한 제2을편 제6난에 쓴다.


孟 後孫

一世 신혁(臣赫)


奉翊大夫密直副使商議會議都監事上護軍門下侍中平章事仍令致仕○始祖旣書姓字則爲始祖後孫者不當更書姓字故平章公依殿直公例亦以後孫某書之○一子


봉익대부밀직부사상의회의도감사상호군문하시중평장사잉령치사○시조기서성자칙위시조후손자불당갱서성자고평장공의전직공예역이후손모서지○1자



[참고문헌]「豐壤趙氏世譜」병술보,2006




풍양조씨증참판공세계분파도(豐壤趙氏贈叅判公世系分派圖)



[編輯: 丙燮]


[참고문헌]「豐壤趙氏世譜」풍양조씨남원공파종회,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