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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선조들의 선양업적(구포의 역사)

1. 들어가며
2. 1600 년대
3. 1700 년대
4. 1800 년대
5. 1900 년대
6. 2000 년대


4. 1800 년대(年代)

1820년 경진보가 간행되고 60년 만에 3중간보를 위한 통문를 제종파에 통지한다. 그 당시 강화유수로 있던 문정공(文靖公) 휘만원(1762~1822)은 예전(禮錢)으로 100량을 희사(喜捨)한다. 통문에는 예목(禮木; 찬조금)을 받는 기준을 정하고 있는데 주로 외임(外任)으로 있는 관찰사 및 수령(守令)으로 있는 분에게만 분등(分等)을 하였다. 그러나 문정공은 3중간 병술(丙戌; 1826)세보가 발간되기 2년 전에 돌아가시며, 이 일은 주로 승지공(承旨公) 휘만협(1773~1846)과 문헌공(文憲公) 휘학년(1786~1854) 양위(兩位)분께서 참여하신다. 이 때 남양국내에 남원공 선영 및 직동국내 동추공 이하 선영 단장을 하며 구포지구(鷗浦地區) 종사중흥의 계기가 되는 화수회(花樹會)가 결성되다. 1990년에 간행되는 경진보(庚辰譜)에는 화농공(華農公) 휘희일(1838~1904)이 4중간 통문에 직접 참여를 한다.

이 시기는 들목조씨의 제2의 전성시대이기도 하다. 문정공 휘만원, 승지공 휘만협, 문헌공 휘학년, 참판공 휘희철(1815~1898), 판서공 휘희일, 군수공 휘성제(1865~1934)는 문과급제를 하였으며, 승지공 휘규년(1799~1867), 판관공 휘희필(1812~1874), 군수공 휘희석(1824~1901), 군수공 휘희식(1830~1892), 군수공 휘희백(1825~1900), 현감공 휘만시(1775~ ), 진사공 휘태년(1805~ ), 진사공 휘희준(1840~1897), 생원공 휘희목(1830~1900) 진사공 휘봉재(1843~1888), 진사공 휘헌재(1838~1859), 진사공 휘돈승(1873~1922), 생원공 휘영재(1868~1937), 진사공 휘용재(1858~1934), 진사공 휘덕재(1869~1951)는 진사생원시 급제자이며, 풍능군 휘의존(1781~ ), 풍령군 휘만혁(1811~1891), 선전관공 휘기년(1838~1869 ) 등의 무과급제 하신분들을 배출한다. 이분들은 대부분이 구포(鷗浦) 즉 들목을 중심으로 세거지가 분포되어 있었으며, 특히 송곡공의 후손들은 3대(三代)에 걸쳐 판서(判書)가 나오고 많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하니 이 지역 명문대가를 꼽을 때 늘 따라붙는 “들목조씨”라는 별칭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었다.

이 무렵 전통적인 분가제도에 의해 지파별(支派別) 국내(局內)가 형성되고 위선사(爲先事)가 활발해지며 단위종중(單位宗中) 별로 향사(享祀)도 이때부터 본격화된다. 지파별 단위종중를 정리하면 표1과 같다.

참판공 휘지진(之縝)은 남양선영지 남원공 묘하에 계시며, 구포 직동선영지에는 동추공이하 2대분(한풍군, 찬성공)의 산소가 있다. 풍양군은 매송 숙곡리, 그리고 찬성공의 차손인 휘위중공(韙中公)은 야목에 계시다. 그러나 판결사공 휘인국(仁國)은 묘소가 양주이나 실전되었으며, 승사랑공 휘엄(儼)은 한풍군 장손으로 후사(後嗣)가 없어 진사공 성중(省中)이 대를 잇지만 그마저 무후(无后)로 세계(世系)는 단절되고 산소마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포저공은 살아 생전에 대흥(大興; 현 예산군 백석) 장지를 마련하여 의정공을 먼저 모시고, 묘후(墓後)에 후손들에 의해 부군이 안장된다. 포저공의 종손인 홍산공은 아버지께서 직접 정한 장지이며, 이후로 이곳 백석촌은 홍산공파의 세장지가 된다.

도산공은 포저공 생전에 작고하니 아버지는 “내 아들이 지금 어디에 가 있느냐”며 간장이 찢어지고, 복받쳐 올라오는 통한의 슬픔을 글로서 담은 제문을 남겼다. 그 제문에 의하면 도산공은 충청도 신창에서 돌아가시고, 숙부인은 부군 상중에 병을 얻어 치료를 위해 서울에 올라와 반 년 만에 세상을 하직하니 구포선영에 장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생원공 역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도 저버리고 27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이승과 작별을 고한다. 포저공의 묘지문에 의하면 공의 장지는 홍주(洪州) 유곡면(酉谷面) 월고치(月古峙)(현 홍성군 홍성읍부근)라는 곳이다. 그러나 언제 반월 직동으로 이장을 하였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어떻든 직동은 동추공, 한풍군, 찬성공 3위(三位)를 모시고, 그 후대에는 도산공과 생원공의 장손댁 중심으로 그 후손들의 세장지지(世葬之地)를 이루고 있다. 풍양군께서 이곳으로 이장이된 시기는 1998년의 일이다.

단양공은 단양군수로 재임 중 현지에서 별세를 하며, 향리로 되돌아 오지도 못하고 그곳 구담리산에 장사를 지냈으나 후손의 관리소홀로 실전되었다. 더욱이나 1980년대 충주댐 공사로 그 지역이 수몰되어 찾기가 더욱 난망(難望)하다. 외증손인 경암공 윤동수(尹東洙)가 쓴 묘표만이 어딘가에 덩그렇게 서 있을지도 모른다.

송곡공의 장지는 교하현(交河縣) 동쪽의 은전리(현 파주시 탄현면 유현리)였으나 최근에 문정공 만원(文靖公 萬元)이 계신 송라선영으로 이장을 했다. 따라서 지금 이곳은 송곡공을 비롯하여 12대손인 병두공(丙斗公)까지 송곡공파(松谷公派) 장손일가(長孫一家)의 세장지(世葬地)를 이루고 있다. 오재공은 광주 송동면 비늘치(鱗峙)에 장사를 지내던 날 문상객의 행렬이 명고서원(明皐書院)이 있는 원리(院里) 초입까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는 구름 같은 인파로 공의 마지막 길을 애도(哀悼)하였다는 일화가 아직도 구전(口傳)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충남 논산시 노성면 하도리(성재동)로 이장을 하였다. 이 모두 후손들이 편안히 잠들어 계신 조상의 유택를 수호하지 못함에 따라 발생한 일들이다.

원래 여통공(汝通公) 휘명형(命亨)과 세중공(世仲公) 휘명재(命才)의 묘소는 반월 직동선영에 계셨다. 그러나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는 없지만 구전에 의하면 아들인 진위공(振威公) 휘한숙(漢淑)께서 양아버지인 여통공은 온양 초사선영으로, 생아버지인 세중공은 신창 학성산에 천장(遷葬)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온양파의 파시조(派始祖)이기도 한 세중공은 도산공(道山公)의 지차(之次)로 고조부이신 포저공이 은거하시던 신창으로 낙향을 하여 세거(世居)하며 융성한 가문을 형성한다. 공은 이곳에서 한식(漢寔), 한숙(漢淑), 한철(漢哲), 한덕(漢德), 한일(漢逸), 한길(漢吉) 6 형제를 낳으며 온양파 가문의 발흥(發興)을 위한 초석을 닦는다. 그 중 한숙은 1727년(영조3), 한철은 1740년(영조 16) 각각 생원시에 합격하여 진위현령(振威縣令)과 태능직장(泰陵直長)을 지낸다. 공은 4형제 중 막내인데 둘째인 여통공(汝通公)께서 28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을 하여 후사가 없으시니 공의 둘째 아들인 진위공으로 하여금 대(代)를 잇게 한다. 진위공께서 태어나기 13년전의 일이니 후대에 와서 입적이 이루어진 것 같다. 이렇게 양 집안이 아들을 나누어 가지며 온양일대에 번성을 하게된다. 현재 초사선영은 여통공, 진위공을 비롯하여 그 이하 후손께서 계시는 진위공파 세장지지이며, 세중공의 후손들은 대부분 학성산 일대에 산재되어 있었는데 2001년 아산시 초사동에 종중유택(납골묘)를 건립하며, 이곳에 세중공을 비롯한 87기의 유골을 안치하였다.

승지공(承旨公) 휘만협(萬協)의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에 위치하고 있다. 천마산의 한 지류로서 풍양조씨의 시조이신 시중공묘역으로부터 서쪽방향으로 4km쯤 떨어져있는 산기슭에 있다. 이곳은 승지공을 비롯하여 장손일가의 세장지(世葬地)를 이루고 있으며, 그 입구에 장손(長孫)이 세거하며 묘소를 수호하고 있다.




표1 지파별 단위종중 향사위(享祀位)

번호 종중명 향사위(享祀位) 선영지
1 대종회 시중공 휘맹(孟) 남양주시 진건면
2 남원공파 남원공 휘계팽(季砰), 빙부 휘이극복(李克復), 참판공 휘지진(之縝) 화성시 남양면
3 동추공파 동추공 휘현범(賢範), 한풍군 휘안국(安國) 찬성공 휘간(侃) 안산시 반월면
4 풍양군파 장의공 휘경(儆) 안산시 반월면
5 판결사공파 부사과공 휘인국(仁國) 김포시 통정면
6 군시공파 군시공(君是公) 휘위중(韙中), 휘후(翬), 순천군수공 휘학(翯), 휘성양(成陽), 휘지염(持廉), 휘명삼(命三) 화성시 야목리
7 포저공파 의정공 휘영중(瑩中), 문효공 휘익(翼) 예산군 신양면
8 홍산공파 홍산공 휘몽양(夢陽), 현령공 휘지강(持綱) 예산군 신양면
9 단양공파 단양공 휘진양(進陽) 단양군 구담리산
10 송곡공파 문간공 휘복양(復陽), 휘지형(持衡), 휘명덕(命德), 참의공 휘한보(漢輔), 참판공 휘정우(廷禹) 화성시 매송면
11 도산공파 도산공 휘내양(來陽), 정랑공 휘지헌(持憲), 참의공 휘명인(命仁), 대산간공 휘한위(漢緯), 진사공 휘정회(廷晦), 통덕랑공 휘정렴(廷濂), 휘성존(性存), 휘만동(萬東) 안산시 반월면
12 생원공파 생원공 휘현양(顯陽), 목사공 휘지항(持恒) 참판공 휘한명(漢明), 휘정위(廷瑋), 휘유존(裕存), 안산시 반월면
13 오재공파 관찰사공 휘지겸(持謙) 논산시 노성면
14 진위공파 통덕랑공 휘명형(命亨), 진위공 휘한숙(漢淑) 아산시 초사동
15 직장공파 통덕랑공 휘명재(命才), 직장공 휘한철(漢哲) 휘정임(廷臨), 휘정순(廷淳) 아산시 초사동
16 군자정공파 군자정공 휘우(羽), 참의공 휘신양(信陽), 참판공 휘지의(持義), 동추공 휘명벽(命璧) 팔탄면 공허
17 자방공파 자방공(子房公) 휘한량(漢良), 휘정준(廷駿), 휘정룡(廷龍), 휘응존(膺存), 휘익존(益存) 평택시 오성
18 판서공파 판서공 휘상존(象存), 문정공 휘만원(萬元), 문헌공 휘학년(鶴年) 화성시 매송면
19 승지공파 휘경존(景存), 승지공 휘만협(萬協), 통덕랑공 휘항년(恒年) 남양주시 용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