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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강[조속]선생 과천호계농장잡기
류기송 제공 2010-11-5 2130

果川虎溪農庄雜記

曾祖考典翰中廟朝執義與冶川朴司諫紹力杜金安老再入旋爲所中朴公則歸嶺南陜川祖考歸果川虎溪別業搆小屋扁其堂曰獨菴遺落世事觴詠自娛罷棄而終今獨菴集一帖刊行于世詠虎溪事甚詳盖家在西面虎溪里距官門十五六里東南望靑溪山前臨大路獨菴亭在家後小岡岡上西望安陽坪衿川界西南望修理山明岳岩獐項等地內有李正祖考墳山亦有數石田土而子孫散處京外不能世居其處歲庚戌使水原奴求入金新昌婢德伊奴乭卜等結幕於家基東邊踰二岡稍奧處以爲守護舊基而壬子以後吾家尤無意於生事不能着實守護三寸叔母正郞宅女壻金茂朱自京中來于此處六七年居生乙卯春移往竹山只令老婢歇非奴愛孫與德伊乭卜等鱗次結幕儼成村落余甲戌秋臨陂赴官時歷入則李沔川丈自本家避病來寓于德伊家傍仍爲居住云與之穩話囙步到後岡周覽舊基今行下來時辛卯天安赴任時也亦留宿瞻拜舊墟嘉靖庚寅距今甲子再周而家垈亭址宛然猶在而栗崗蓴塘盡爲隣人樵採之場亭址左麓則爲閔僉事入葬處奴婢所居之地則爲李沔川村里乭卜㖙金雖不離舊居而有若李家夾戶者然百年先業子孫往來瞻慕之地到今廢隳不肖之罪烏得免焉辛卯春在歡城旅館書示兒輩 [滄江先生集 趙涑]

과천 호계농장 잡기

증조부(曾祖父) 전한공(典翰, 조종경)은 중종 때 집의로서 사간 야천 박소와 김안로가 거듭 벼슬에 들어옴을 힘써 막다가 곧 중상모략을 받아 박공은 영남 합천으로 가고, 증조부는 과천 호계 별장으로 가서 작은 집을 짓고 그 집 편액을 독암이라 했다.

세상일을 잊으며 술과 시로 스스로 즐기고 버려진 파기된 채 생을 마쳤다. 지금 독암집 1첩이 세상에 간행되었는데, 호계의 일을 읊은 것이 매우 자세하다. 집은 서면 호계리에 있는 과천 관문에서 15~6리에 떨어져 있다. 동남으로는 청계산을 바라보며 앞으로는 큰 길에 접해 있다.

독암정은 집 뒤 작은 언덕에 있는데, 언덕 위에서는 서쪽으로 안양평과 금천을 경계를 바라보고, 서남으로는 수리산, 명악암, 장항 등지를 바라본다. 안으로는 이정(李正) 조부의 선산이 있고, 또 몇 섬지기의 전토가 있으나 자손이 경외에 흩어져서 그 곳에 대대로 살지 못하였다.

광해2(1610)년에 수원의 남종을 시켜 김신창의 여종 덕이와 남종 돌복 등을 구해들이게 하고, 초막을 집터 동편의 두 언덕을 넘은 조금 깊은 곳에 짓게 하고 옛 터를 수호하게 하였다. 그러나 광해4(1612)년 이후로 우리 집은 더욱 농사에 뜻이 없어서 착실하게 수호할 수 없었다.

삼촌숙모 정랑댁 사위 김무주가 서울로부터 이곳에 와서 6~7년 살았다. 광해7(1615)년 봄에 죽산으로 옮겨 갔다. 다만 늙은 여종 경비와 남종 애손으로 하여금 덕이 ․ 돌복 등과 차례로 초막을 짓게 하여 촌락을 이루었다.

내가 인조12(1634)년 가을에 임피로 부임하는 길에 들렀더니 이면천 어른이 본가에서 병을 피하여 덕이의 집으로 우거하다가, 그 옆에 그대로 거주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와 온화하게 대화하고 도보로 뒤 언덕에 올라 옛 터를 두루 살폈다.

지금 행차에 내려오니 때는 효종2(1651)년 천안에 부임할 즈음이다. 또한 하룻밤을 유숙하면서 옛터를 바라보며 참배하였다. 중종25(1530)년은 지금까지 갑자(甲子)가 두 번 돌았는데 집터와 정자 터가 완연히 그대로 있고, 밤나무 언덕과 순채 연못은 모두 이웃 사람의 땔나무하며 나물 캐는 곳이 되었다.

정자 터 왼쪽 기슭은 민첨사의 산소 자리가 되고, 노비가 살던 곳은 이면천의 마을이 되었으며, 돌복 ․ 덜쇠는 비록 옛 거처를 떠나지 않았으나, 이면천 집의 협호처럼 되어 있었다. 백년의 선조 사업은 자손이 왕래하며 바라고 사모하는 곳인데 지금에 와서 퇴락하였으니, 불초의 죄를 어찌 면할 수 있겠는가. 효종2(1651)년 봄에 천안 여관에서 써서 아들들에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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