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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경 선생과 조속 선생 약력[안양 호계서원 배향]
류기송 2010-10-31 2196

 

안양 호계서원 자료 수집 중에 수집한 조종경 선생과 조속 선생의 약력입니다.

조종경(趙宗敬) 1495년(연산군1)∼1535년(중종3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자신(字愼), 호는 독암(獨庵). 팽(彭)의 아들이다. 1516년(중종11) 사마시를 거쳐, 1520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주서·부수찬·정언·수찬 등을 차례로 지냈다.

1524년 이조정랑에 천거되었으나 당대의 권신 김안로(金安老)의 반대로 좌절되었다가, 1526년 지평을 거쳐 비로소 취임하게 되었다. 그뒤 장령·사간·전한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1531년 사섬시정(司贍寺正)으로 재직하던 중 심정(沈貞)의 당여(黨與)라는 김안로의 탄핵으로 파직되어 과천에 물러나 있게 되었다. 1537년 김안로가 사사(賜死)되자 신원되고, 죽은 뒤 [도승지에 추증되고] 과천의 호계서원(虎溪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독암유고(獨庵遺稿)가 있다.

 

조속(趙涑) 1595년(선조28)∼1668년(현종9).

조선 후기의 서화가.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희온(希溫)·경온(景溫), 호는 창강(滄江)·창추(滄醜)·취추(醉醜)·취옹(醉翁)·취병(醉病). 병조참판에 추증된 수륜(守倫)의 아들이며, 문인화가 지운(之耘)의 아버지이고, 이조판서를 지낸 박태상(朴泰尙)의 장인이다.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공을 세웠으나 훈명(勳名)을 사퇴하였고, 효종 때 시종(侍從)으로 뽑혔으나 역시 사양하였다. 1627년 덕산현감에 임명된 이후 장령·진선(進善)을 역임하고 상의원 정(尙衣院正)에 이르렀다.

[사후에 숙종21(1695)년 청백리에 녹권되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창강일기(滄江日記)가 있으며 광주(廣州)의 수곡서원(秀谷書院), 과천의 호계서원(虎溪書院), 서천의 건암서원(建巖書院), 김제의 백석사(白石祠)에 제향되었다.

그는 풍채가 맑고 깨끗하였을 뿐 아니라 지조가 높고, 또한 청빈하여 칭송받았다. 때로는 끼니를 걸러야 하는 가난함에도 구애치 않았으며, 고금의 명화와 명필을 수집, 완상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시서화삼절(詩書畵三絶)로 일컬어졌으며, 그림은 매(梅)·죽(竹)·산수(山水)와 더불어 수묵화조(水墨花鳥)를 잘 그렸다.

특히, 까치나 수금(水禽) 등을 소재로 한 수묵화조화에서 한국적 화풍을 이룩하여 조선 중기 이 분야의 8대표적 화가로 꼽힌다.

명대(明代)의 수묵사의화조화가(水墨寫意花鳥畵家)인 임량(林良)의 영향을 토대로 발전된 성기고 까칠한 붓질과 도안적인 형태들이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는 한국특유의 정취 짙은 서정세계와 상통되는 것으로, 이러한 화풍은 그의 아들인 지운을 비롯하여 전충효(全忠孝)·이함(李涵)·이하영(李夏英) 등에게로 이어졌다.

그밖에도 공필풍(工筆風)의 금궤도(金櫃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남종화풍이 깃들어 있는 호촌연의도(湖村煙疑圖)와 같이 주목되는 작품들을 남기고 있는데, 특히 미법(米法)을 기조로 하여 다루어진 호촌연의도는 조선시대 남종화(南宗畵)발전의 초기단계를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는 그림뿐 아니라 역대명필들의 글씨에도 관심을 보여 그 진적(眞蹟)과 금석문(金石文)의 수집활동을 시작한 이 방면의 선구자로도 꼽힌다. 대표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노수서작도(老樹棲鵲圖)와 매도, 간송미술관 소장의 매작도(梅鵲圖)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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